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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11. 2021

내 마음의 안경을 찾아야겠다


아내와 요즘 눈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갑내기인 아내는 오래전에 백내장 시술을 한 차례 받았는데 시간이 흘러서 다시 한쪽 눈 백내장 시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이 오십이 되면 눈이 침침해진다고 하시던 어른들의 말씀이 몸으로 들리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도 책을 좀 보고 있노라면 눈에 집중이 잘 안 된다.

눈물이 나기도 해서 눈을 몇 번 비벼야 한다.

나이 들어서 할 일이 없으면 책이나 보겠다던 호기는 그야말로 젊은 날의 철부지 같은 말이었다.

눈이 약해지면 책을 읽는 것조차 힘들 게 뻔하다.


한때는 양쪽 눈의 시력이 2.0을 유지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검사를 해보니 간신히 1점대에 턱걸이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덜컥 부담이 되었다.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솔솔 마음속에서 똬리를 튼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연하고 싶지가 않다.




초등학생 시절에 두 살 위의 막내누나가 안경을 끼게 되었다.

책을 많이 봐서 눈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분명히 좋은 일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안경을 나도 하나 장만하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색안경을 낀 배우가 등장하면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없었다.

어느덧 어른이 되어서 나도 몇 개의 색안경을 장만했다.

운전할 때, 운동할 때, 어디 여행 갈 때 종종 사용한다.


그런데 평상시에 안경을 착용하지 않으니 색안경을 끼면 이상하게도 눈에 불편함이 있다.

더군다나 안경에 김이 서리기라도 하면 너무나 거추장스럽다.

그래서 안경을 빼서 머리에 꽂기도 하고 모자 위에 얹히기도 한다.

그러다가 안경을 땅에 떨어뜨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안경을 제 눈처럼 소중히 대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내 눈이 안경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나에게 오는 안경들은 제대로 대우를 받지도 못하고 있다.




사실 안경도 예전에는 굉장히 귀한 물건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하던 시기에 안경이 전해졌다고 한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개발과 함께 책 보급이 늘어났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눈 시력이 약해지는 사람들도 늘었다.

유리 제조 기술자들은 일찌감치 오목렌즈, 볼록렌즈의 가치를 알았고 그 기술을 이용해서 안경을 만들었다.

안경의 도움을 받아 시력이 약해진 사람들은 글 읽기에 다시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이런 소중한 물건이 우리나라에 전해지자 조선의 선비들도 여유가 있으면 안경을 하나씩 장만했다.

특히 책 읽기를 좋아했던 정조임금이 안경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바다에서 해산물을 캐는 잠녀(해녀)들은 물속에서도 사물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물눈(물안경)을 하나 구입하는 게 소원이었다.

하늘의 별자리를 살피고 먼 곳의 지형지물을 보려는 사람들은 망원경을 갖고 싶어 했다.




이제는 안경이 많이 보급되어 멀리 있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도, 등잔 밑이 어두운 사람도, 햇빛에 눈이 부신 사람도 안경의 도움을 받아서 편안하게 볼 수가 있다.

어느 안경점 사장님이 들려준 말인데 사람은 언제가 한 번은 안경을 착용하게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면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다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끼칠 수도 있다.

그러기 전에 안경의 도움을 받아서 밝은 눈으로 세상을 똑바로 보면서 살아가는 게 좋다.


그런데 나에게는 눈이 두 군데에 있다.

하나는 얼굴에, 하나는 마음에 있다.

얼굴의 눈을 위한 안경은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마음의 눈을 위한 안경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자꾸 부딪치고 넘어지는데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큰일 날 것 같다.

빨리 마음의 눈을 위한 안경을 찾아야겠다.

분명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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