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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14. 2021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바닥을 쳤으니까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어.”

“여기서 더 나빠질 일은 없어.

이제 곧 나아질 거야.”

“조금만 견디면 고생이 끝날 거야. 이제 곧 행복 시작이야.”

“꿈은 이루어질 거야.”

많이 들어보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흔히 하는 말이다.

자기계발을 독려하는 책에서는 단골로 나오는 말이다.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니까 좋은 생각을 하고 긍정의 힘을 믿으라고 한다.


정말로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생각은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땅을 걸어가고 있다.

생각한 대로 안 되는 일도 다반사이다.

생각한 대로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면 그다음에 들려오는 대답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제는 생각만 해도 된다고 했으면서 이제는 노력 부족이라며 나에게 문제가 있고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럼 열심히 노력하면 다 되는가?

노력해도 이루지 못하는 꿈들이 있다.




조선의 마지막 과거시험은 1894년에 있었다.

고려 광종 임금 때인 958년부터 시행된 과거시험은 조선 500년 동안 계속 이어졌다.

무려 900년 동안 관직에 나아가는 등용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갑오개혁으로 폐지되었다.

대신에 총무대신 등 각 대신들에게 관리 임용권이 주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이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갑자기 자신들의 꿈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열심히 노력해서 사서삼경을 달달 외웠는데 그 노력이 쓸 모가 없어져버렸다.

그 충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은 이러지만 곧 회복될 거야. 900년을 이어온 과거제도가 하루아침에 폐지되지는 않을 거야.’라며 자신을 다독였을 것이다.

지금은 어수선하지만 머지않아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하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긍정적인 생각이 분명 우리 삶에 활력을 주지만 때로는 생각의 나래를 펼치지 말고 주어진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생각대로 된다는 플랜A가 있다면 ‘생각대로 안 되면 어쩔 건데?’라는 플랜B도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플랜A에 몰입한다.

그러다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급격히 무너진다.

허탈감에 빠지고, 우울해지고, 불안하고 분노하고, 삶의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해 버린다.

플랜A의 허점이다.

이럴 때는 플랜B가 그나마 도움이 된다.


플랜B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섣불리 나서서 무엇을 어떻게 해 보려고 하는 게 아니다.

고통의 상황이라면 그 고통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이 꿈꾸고 싶은 희망을 내려놓고 긴 시간 동안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무능하고 무기력해 보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속세를 떠나 도통한 사람처럼 보인다.




제임스 스톡데일(James Bond Stockdale)이라는 미군 장교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에 포로로 잡힌 후 무려 8년 동안 수용소에 갇혀 지낸 후 1973년에 풀려났다.

수용소에 갇힌 포로들은 대부분 곧 풀려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자 깊은 상실감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삶의 의미를 놓아버렸다.

그런 사람들 틈에서 스톡데일은 막연히 잘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자신이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죽을 때 죽더라도 살 수 있을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견뎠다.

그랬더니 풀려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처럼 역경에 처했을 때 긍정적인 희망에만 기대지 말고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묵묵히 견뎌내는 것을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한다.

이 시대에 우리가 지녀야 할 또 하나의 삶의 자세일 것이다.

(스톡데일 패러독스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는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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