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목을 묶고 있는 매듭은 과감히 잘라버리자

by 박은석


기원전 800년 경 지금의 터키 땅인 소아시아에 프리기아(Phrygia)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의 왕이었던 고르디우스(Gordius)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고르디온이라는 도시를 만들고 수도로 삼았다.

또한 왕은 도시 한복판에 왕의 마차를 가져다 놓고서는 누구든지 그 마차를 가져가도 좋다고 하였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달려와서 그 마차를 가져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마차를 가져갈 수가 없었다.

고르디우스왕이 아주 복잡하게 꼬아놓은 매듭으로 그 마차를 묶어두었기 때문이다.

매듭을 풀지 못해 눈앞에 있는 마차를 가져가지 못한 사람들은 괜히 성질만 부리고 돌아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 사이에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라는 말이 나돌았다.

만약 그 매듭을 푸는 사람이 온다면 그가 소아시아를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말까지 더해졌다.




어느 날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이 군대를 이끌고 원정을 나선 길에 고르디온에 들렀다.

그도 고르디우스왕의 마차를 묶고 있던 매듭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고 살펴봐도 도무지 매듭의 처음이 어디이며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매듭을 들여다보던 젊은 왕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전해오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해결하는 자가 소아시아를 통치하게 될 것이다.”

이 젊은 왕은 소아시아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세우고 싶은 야심가였다.

하지만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었다.


왕은 생각을 바꾸었다.

그리고 갑자기 칼을 뽑아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버렸다.

너무 놀라서 어안이 벙벙한 채 서 있는 사람들 앞에서 왕은 고르디우스의 마차에 올라탔다.

그 기세로 소아시아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세웠다.

그가 바로 30세의 젊은 대왕 알렉산더이다.




수백 년 동안 모든 사람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지 못했다.

매듭을 풀지 못하니 마차를 가져갈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매듭 앞에서 풀이 죽어 돌아갔다.

정작 원했던 마차는 쳐다보지도 않고 매듭만 보다가 돌아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마차가 아니라 매듭이었다.


알렉산더의 목표는 마차였다.

아니 소아시아 정복이었다.

매듭 앞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매듭에 얽힌 전설에 자신의 꿈까지 묶어놓을 수는 없었다.

매듭을 풀든 풀지 못하든 알렉산더는 이미 원정길을 떠나왔고 앞으로도 계속 진군할 계획이었다.


매듭을 잘 풀어서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매듭은 버리고 마차를 가져갈 것인가?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나면 해결은 아주 간단히 얻을 수도 있다.

고르디우스왕은 마차를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면 마차를 가져가면 된다.

매듭을 푸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차가 중요하다.




살아오면서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푸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하나의 매듭을 풀었나 생각하면 또 하나의 매듭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매듭을 풀다 보면 이미 풀었다고 생각한 쪽에 또 새로운 매듭이 만들어졌다.

번번이 매듭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내 주제에 마차에 앉는 것은 헛된 꿈이라고 생각했다.

매듭을 푸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괜히 매듭을 만든 고르디우스왕만 원망하며 지냈다.


그런데 언제까지 매듭만 붙잡고 있을 것인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매듭 앞에서 시간만 축내고 돌아갔다.

나까지 그들의 모습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알렉산더의 꿈은 매듭도 아니고 고르디온의 마차도 아니었다.

세계 정복이었다.

세계를 정복하려면 매듭을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진군해야 한다.

진군을 멈추게 하는 매듭은 잘라버려야 한다.

가져가지도 않을 매듭, 내 발목을 묶고 있는 매듭은 이제 과감히 잘라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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