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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19. 2021

나의 유토피아에서 즐기는 여름휴가


해마다 7월 말이면 여름휴가라는 것이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살짝 흥분하게 만들었었는데 올해는 도통 흥이 나지 않는다.

어디 경치 좋은 곳에 나설 수도 없고, 긴 시간을 집에 콕 박혀 있어야 한다.

집에 있으면 돈이 굳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모처럼의 휴가인데 하루 세 끼 집밥을 먹고 싶은 식구들은 없을 것이고, 날씨는 연일 푹푹 찌고 있어서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 두어야 한다.

우리 집의 엥겔지수와 전기요금이 만만치 않게 나갈 것이다.


이럴 바에야 밖으로 나가는 게 나을 수도 있는데 정부에서는 연일 나가지 말라는 방송을 한다.

날도 더운데 집에 있으란다.

모범생 기질이 있는 우리 아이들도 나가지 말잖다.

집이 좋단다.

밖은 무서운 곳이니까 집 안에 꼭 들어앉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슨 전쟁통도 아닌데 이렇게 지낼 수밖에 없다.

그게 제일 안전하니까 말이다.




작년 2월에 코로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한 두어 달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래서 설 연휴기간이었지만 조용히 지냈다.

확진자 수의 폭발적인 증가가 있을 때마다 조금만 지나면, 조금만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가졌다.

판도라의 상자에 아직 머물러 있는 ‘희망’을 내 마음에도 간직하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실체를 알아가면서 근거 없는 기다림을 접고 코로나와의 상생을 생각하게 되었다.

단지 코로나는 저쪽에서 살고 나는 이쪽에서 살면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점점 코로나가 차지하는 세상은 더 넓어지고 내가 맘 놓고 살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고 있다.

바둑돌을 잘 둔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내가 두었던 돌들이 잡아먹힌 꼴이다.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좁은 곳으로 점점 몰리는 기분이다.

휴가철이면 밖으로 밖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갔는데 이번 휴가는 안으로 안으로 더 좁은 세상으로 들어간다.




1 더하기 1은 2라는 공식처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질서 정연할 것이라 생각했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다 보면 계단의 끝에 다다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열심히 일하면 땀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일 더하기 일은 중노동이 되는 것처럼 수학공식으로는 풀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내가 올라가는 계단의 끝이란 게 과연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땀을 흘려도 그에 맞는 보상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리 조심하고 준비를 해도 바이러스를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그러니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은 공평할 것 같지만 너무나 불공평한 일들이 판을 친다.

그래서 자꾸 ‘더 좋은 세상은 없을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토마스 모어도 그런 생각을 했고 자기 생각을 아예 책으로 펴냈다.

<유토피아(Utopia)>이다.

말만 들어도 가보고 싶은 곳, 천국과 같은 곳이다.

실제로 여러 사람들이 그런 나라가 있을 것이라며 길을 떠났다고도 한다.

무지개를 찾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는 없다.


토마스 모어 이전에는 ‘유토피아’라는 말 자체도 없었다고 한다.

‘유(U)’는 ‘없다(Ou)’라는 뜻을 지니고 ‘토피아(topia)’는 ‘장소’라는 뜻의 말이다.

그러니까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다.

그런데 유토피아의 ‘유(U)’가 ‘좋다(Eu)’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면 유토피아는 ‘너무나 좋은 곳’이 된다.

유토피아는 우리와 숨바꼭질하는 것 같다.

찾으려면 숨어버려서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찾지 못해도 숨바꼭질은 즐거운 놀이이다.

집 안에 갇혀도 웃으며 즐기는 그곳에 나의 유토피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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