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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22. 2021

왜 낳았냐고요? 그건 기적이었어요!

 

얼마 전 어느 밤에 이웃집에서 사춘기 아들이 엄마와 말다툼하는 것을 들었다.

들으려고 해서 들은 것이 아니라 목소리가 너무 커서 들린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아들이 엄마에게 “그러니까 왜 나를 낳았냐고?” 하며 외쳤다.

그리고 연이어 엄마인 듯한 중년 여성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었다.

얼떨결에 지나가다가 그 소리를 들은 나 자신도 가슴이 콱 막혔다.

만약 우리 애들이 나중에라도 저런 소리를 한다면 그때는 하늘이 무너질 것 같다.


‘왜 낳았을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단연 압도적인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었고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보면서 더욱 사랑하고 싶었다.

잘 키워서 훌륭한 사람을 만들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하는 생각도 없었다.




아이를 낳고 싶다고 해서 다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잘 먹고 건강하다고 해서 잘 낳는 것도 아니다.

조선의 왕들을 보면 잘 먹었으면서도 아이는 잘 낳지를 못했다.

임신했다고 좋아했는데 곧 유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음에 임신하면 돼지 뭐.’

이런 말로 위안이 되지도 않는다.


보통 2~3억 개의 정자가 난자 하나를 만나기 위해 헤엄을 친다.

먼저 가서 터치하는 정자만 살아남는다.

한 사람의 일생을 통틀어서 이렇게 숨 막히고 치열한 경쟁은 없다.

적어도 우리는 2억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들이다.

수백 명이 출발한 마라톤 경주에서 1등으로 들어오면 온갖 축하의 박수와 인사를 받는다.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시험에 합격해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한다.

2억 대 1의 경쟁에서 승리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존재이다.

그게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생명은 그 시작부터가 기적이었다.

수십억 인구 중에서 우리의 부모가 만난 것도 기적이고 정자와 난자가 만난 것도 기적이고 태어난 것도 기적이고 살아온 것도 기적이다.

단 한순간도 기적이 아니었던 때가 없다.


중학생 때 학교에서 해수욕장으로 수련을 떠난 적이 있었다.

‘임해훈련’이라는 수업의 연장이었지만 물놀이 시간이었다.

신나게 놀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물 밖으로 나갔다가 구명튜브를 들고 다시 들어가는데 방금 전에 내가 나온 그 길목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옆 반 친구가 내가 헤엄쳐 나온 바로 그곳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나보다 잘 생기고 키도 컸던 친구였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목숨을 잃었고 나는 무사히 빠져나왔다.

억지 같은 주장이지만 나는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

매일매일 다양한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는데 기적처럼 나는 그 시간과 장소를 피하며 살아왔다.




지금은 천국에 가 있겠지만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였던 장영희 선생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란 책을 참 좋아했었다.

그분이 번역한 영문 시들도 입에 착 달라붙어서 너무 좋았다.

그분은 아들을 선호하던 시절에 딸로 태어났다.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목발을 짚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암투병을 오랫동안 했다.

자신에게는 인생이 가혹하고 불공평하다고 수도 없이 되뇌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인생을 ‘기적’으로 표현하였다.


왜 낳았냐고?

그건 부모도 모른다.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엄마의 뱃속에서 생명의 기적이 싹텄다.

기적처럼 열 달을 그 좁은 배 안에서 살아주었다.

죽을 것 같은 아픔과 고통을 이를 앙다물고 참고 견뎠더니 “응애”하고 태어난 것이다.

뭘 먹일지, 뭘 입힐지도 잘 몰랐다.

모든 게 서툴렀던 부모인데 기적처럼 살아주었고 성장해주었다.


왜 낳았냐고요?

몰라요. 그건 기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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