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을에 살았던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를 좋아했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다음에, 조금만 더 준비하고.’ 그러는 사이에 갑순이는 시집을 가버렸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인데 그렇다고 해서 허구한 날 준비만 하면서 보낼 수는 없다.
때로는 완벽할 때까지 준비하는 것보다 먼저 일을 저지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완벽한 찬스에 얻은 골보다 생각지도 못했을 때 벼락같이 터진 골이 더 오래 기억된다.
준비를 잘 하는 사람은 그가 준비한 만큼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볼 수 있다.
반면에 일을 저지르기 좋아하는 사람은 옆에서 보기에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지만 때를 잘 만나면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다.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잘 준비했다고 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올림픽 메달을 얻기 위해서 몇 년 동안 준비를 했어도 예선에서 탈락하기도 한다.
메달이 목표였던 선수라면 정말 허망할 것이다.
‘또 4년을 준비를 해야 하나? 어느 만큼 준비를 해야 하나?’
이런 생각에 올림픽을 즐기지도 못할 것 같다.
우리나라 선수들 중에서 유독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특히 유망주라고 불렸던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더욱 그렇다.
인터뷰 내용은 거의 똑같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라고 울먹인다.
도대체 왜 우리에게 죄송해야 할까?
우리가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우리가 낸 세금으로 훈련받아서 그런가?
거의 모든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도 솔직히 올림픽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전혀 관심도 없었다.
어떤 종목에 어느 선수가 실력이 좋은지도 몰랐다.
출전하는 선수들 대부분이 내가 처음 듣는 이름이다.
올림픽 경기에 내가 뛰고 싶다고 해서 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팀 경기는 지역별로 할당된 출전권을 얻어야 하고, 개인 경기는 국제경기에서의 성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어느 팀, 어느 선수라도 메달을 획득할 수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받은 선수들이다.
그 자리에 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실력이다.
이번 올림픽에는 세계 205개국에서 1만 5천여 명의 선수가 참가했다고 한다.
정식종목이 모두 33개인데 그중에서 우리나라는 29개 종목에 230명이 넘는 선수가 출전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 태극기를 가슴에 단 선수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태극기를 들고 올림픽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48년 런던올림픽이었다.
고작 50명의 선수가 7종목에 출전했다.
아마 라디오 중계도 제대로 안 되었을 것이다.
동메달 2개를 획득했다고 하는 소식도 하루 이틀 지난 후에나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상전벽해이다.
방송사들이 경기를 중계하면서 전직 대표선수를 해설자로 모셨다.
선수의 마음은 선수였던 이들이 잘 안다.
그래서인지 해설자들은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고 또 안타까워하면서 울기도 하고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꼭 해 주는 말이 있다.
“여기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합니다.”하는 말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의 대사로 응원을 보내고 싶다.
혁명과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던 지바고가 마음 깊이 사랑하던 라라를 만났을 때 해 준 말이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지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서 태어나지는 않았소. 인생 그 자체, 인생의 현상, 인생의 선물, 이런 것들은 숨 가쁠 만큼 중요한 것이오.”
그렇다.
평생 준비만 하다가는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답고 황홀한 장면을 볼 수가 없다.
준비는 그만큼 했으면 됐다.
이제는 즐길 때이다.
지금 이 순간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코리아 파이팅!”
++사진 출처 : 노컷뉴스(https://www.nocutnews.co.kr/news/5594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