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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06. 2021

괜찮다 괜찮다 처음이라서 괜찮다


운전 중에 앞차가 이상해 보이면 나의 오지랖이 발동한다.

자동차가 횡단보도 앞에 서면 문을 열고 꼭 알려준다.

주로 후미등, 방향지시등, 브레이크 등에 불이 켜지지 않았을 때이다.

운전자는 자기 눈에 안 보이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다.

굳이 불이 안 켜져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불 하나 때문에 크고 작은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밤에는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전깃불과 가로등 불빛 때문에 도로가 환하다.

그래서 가끔 전조등을 켜지 않은 채 달리는 차들이 있다.

흔히 ‘스텔스 차량’이라 불린다.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처럼 운전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차량이기 때문이다.

차선을 변경하는 순간에 이런 스텔스 차량이 갑자기 나타나서 기겁을 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래서 이런 차량이 보이면 꼭 다가가서 전조등을 켜라고 알려준다.

몰라서 그런 것이다.

누구나 다 그런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앞차가 조금 굼뜨는 것 같아서 다가가 보면 뒷 유리창에 ‘초보운전’이란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그럴 때는 그 차를 멀찍이 피해서 간다.

기계 하나를 사도 처음에 작동을 시킬 때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든다.

‘제대로 될까?’

‘고장 나지는 않을까?’

별별 걱정을 다 한다.

하물며 자동차는 오죽할까?

거기에다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더해지면 더욱 당황하게 될 것이다.


운전 실력도 서툰데 자동차 조작까지도 서툴 때가 있다.

방향지시등을 켠다고 했는데 와이퍼를 작동시켜서 나 스스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누구나 그런 때가 있다.

처음부터 카레이서처럼 슝슝 달리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운전실력이 늘어났지만 낯선 길에 들어서면 다시 초보운전자가 된다.

일방통행길을 역주행하기도 하고 나갈 길을 찾지 못해서 몇 번이나 같은 곳만 뱅뱅 돌기도 한다.

그곳이 처음이라서 그렇다.




처음에는 운전대 잡는 것만으로도 잔뜩 힘이 들어가고 긴장이 된다.

30분만 운전해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근육과 신경이 굳어버린다.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주위의 시선이 달갑지 않다.

목숨 걸고 운전하느니 차라리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다니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도 듣는다.

그러나 처음이 없으면 그다음의 발전도 없다.


처음부터 박수갈채를 받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왕조를 연 임금들도 처음에는 백성들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서양 예술사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로크 양식은 이전까지와는 맞지 않는 표현방식을 사용했기에 ‘찌그러진 진주’라는 말을 들었다.

진주가 찌그러졌으니 별로 값어치가 없다는 뜻이었다.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은 “그림이 형편없이 인상적이네”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런 놀림을 받았는데 나중에는 그 말이 그 시대를 대표하게 되었다.




누구나 처음을 경험한다.

첫 등교, 첫 출근, 첫 만남, 첫아기.

첫걸음을 떼어야 두 번째 세 번째 걸음도 뗄 수 있다.

앞으로 가든, 옆으로 가든, 뒤로 가든지 간에 첫걸음을 디뎌야 한다.

첫 계단이 있기 때문에 그 처음을 발판 삼아 한 계단씩 올라갈 수가 있다.

처음이라고 기죽을 필요 없다.

처음이라고 얕보면 안 된다.


진보적인 사상 때문에 20년 넘게 감옥살이를 했던 신영복 선생은 좁은 콘크리트 울타리 안에 있었으면서도 모든 것을 처음 보듯 하였다.

그의 마음을 알아서 그럴까?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도 그의 글씨가 새겨진 <처음처럼>을 마시며 “위하여!”를 외친다.


각박해 보여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처음이어서 도와주고 처음이어서 용서해주고 처음이어서 괜찮다고 해주는 세상이다.

괜찮다. 괜찮다. 처음인데 괜찮다.

세상만사 우리의 일상이 매일매일 첫날이고 매 순간 매 순간이 첫 순간이다.

오늘은 오늘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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