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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31. 2021

미꾸라지 효과


어릴 적 우리 동네 저수지에 물이 삐쩍 마를 때가 있었다.

어른들은 물이 줄어드는 것이 걱정되었겠지만 나와 같은 아이들에게는 저수지에 들어가 물장구를 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물이 많을 때는 누가 빠져 죽었다느니 하는 흉흉한 이야기를 토해내는 곳이지만 물이 줄어들면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드는 놀이터가 되었다.

어디선가 모기장 쪼가리를 가지고 와서 양 끝에 막대기를 붙여 그물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바닥을 쓰윽 훑으면 붕어도 잡혔고 송사리도 잡혔다.

가진 것이 맨손밖에 없을 때는 제방 아래쪽 돌 틈에 손을 집어넣으면 미끌거리는 것이 잡혔다.

순간 놀라서 얼른 손을 뺐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미꾸라지였다.

길고 가느다란 몸통에 주둥이가 툭 튀어나온 아주 못생긴 녀석이었다.

어린놈들도 어른 흉내를 내려고 일찌감치 주둥이 옆으로 두 줄기 수염을 길게 내놓은 녀석이 미꾸라지이다.




뱀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짱돌을 집어 들었던 것처럼 미꾸라지에게도 까닭 모를 미운 마음이 있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는 말을 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학교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선생님들은 종종 단체 기합을 주곤 하셨다.

잘못한 녀석이 이실직고하면 되었는데 누가 잘못을 했는지 몰랐다.

미꾸라지처럼 어디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우리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미꾸라지는 공공의 적이었다.

그런 못된 놈은 빨리 잡아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미꾸라지는 물속에 있는 해충들을 잡아먹어서 오히려 물을 깨끗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지켜볼 때는 물을 어지럽히기만 한다.

미꾸라지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그렇게 보이는 걸 어떡하겠는가?

좋은 일을 했다고 해서 다 좋은 게 아니다.

결과도 좋아야 하지만 보이는 과정도 좋아야 한다.




왜 눈에 보이는 모습만 가지고 평가하느냐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어불성설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어떻게 찾아내었는가?

다 보였기 때문이다.

하늘이 굽어보고 땅이 올려다본다.

아무리 꼭꼭 숨어 있어도 머리카락 보이기 마련이다.


요즘 들어 부쩍 “왜 우리만 가지고 그러느냐?”는 불만 섞인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정말 몰라서 그러느냐?’는 눈초리를 보낸다.

물을 흐리며 미꾸라지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남들에게는 안 좋게 보이는 걸 어떡하겠는가?

저수지에는 미꾸라지만 사는 것이 아니다.

미꾸라지가 지내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해서 다른 생물에게도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흙을 헤집지 않으면 물은 항상 맑다.

그런데 미꾸라지는 진흙 속에서 먹잇감을 찾으니 물을 흐려놓아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다른 생물들이 모두 맑은 물을 원해도 미꾸라지는 물을 흐려야만 먹고살 수가 있다.

그래서 그 더러운 진흙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맨 처음 추어탕을 만들어 먹은 사람은 미꾸라지를 싫어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싫어했다면 잡아먹는 일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아마 물이 깨끗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고 있으니까 그놈의 미꾸라지를 잡았을 테고, 잡은 놈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 솥에 집어넣고 갖은양념을 곁들여 탕을 만들었을 것이다.

미꾸라지가 보양식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미꾸라지를 먹어서 힘이 생긴 것이 아닐 것이다.

미꾸라지를 잡은 후에 깨끗한 물을 마시게 되어 건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미꾸라지에게는 비극이었지만 그 사람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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