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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16. 2021

침대를 치우고 방바닥에서 자면 어떨까?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를 치워버리자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마음이 요동친다.

오늘은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서 자꾸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어떤 사람들은 주식 시세표를 보고, 어떤 사람은 코로나 확진자 증가 숫자를 본다.

환율이 출렁일 때마다 마음도 출렁인다.

넓은 제국도 힘으로 눌러서 평정시킬 수 있지만 마음은 힘으로 눌러서 평정할 수 없다.

바다 너머에 사는 가족이 있으면 바다 너머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내 마음속으로 그려놓은 선이 있는데 그 선을 조금이라도 수정해야 한다면 내 마음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내가 그린 그림은 완벽해서 더 이상 손을 대면 안 된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온도 습도는 물론 공기의 흐름까지도 차단시켜서 천년만년 보존해야 하는 위대한 작품이다.

모나리자에게서 흠집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내 생각의 그림에도 흠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생각이 무너질 때가 있다.




그리스신화에 프로크루테스(Procrutes)라는 흉악한 도둑놈 이야기가 있다.

엄청나게 덩치가 크고 머리도 비상한데 잔인한 놈이다.

이놈은 쇠로 만든 침대를 하나 마련해 놓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그 침대에 눕혔다.

그 사람의 키가 침대에 꼭 맞는다면 살려주었지만 침대보다 키가 작거나 너무 크면 가만두지 않았다.

침대보다 키가 큰 사람은 잘라서 죽였고, 침대보다 키가 작은 사람은 늘려서 죽였다.

물론 그 사람의 재물은 빼앗았다.


이미 만들어진 침대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 침대에 자신의 키가 맞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듣는 사람의 마음은 불안해진다.

예전에 우리나라 군대에서는 비일비재하게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자기 발 사이즈에 맞는 군화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받은 군화에 자기 발을 맞춰야 한다는 말이 당연하다는 듯이 나돌았던 시절이 있었다.

불안한 시절이었다.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마음이 요동을 치는 이유가 있다면 내 마음에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하나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내 나름대로의 기준과 잣대를 딱 세워 놓고 다른 사람을 저울질하고 재보고 있다.

어디 그런 사람 있을까 찾아보지만 아직까지 내 기준에 맞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형의 나라와 세계가 있다.

그런 나라를 만들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내 생각대로만 움직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나라가 내 생각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이 세계가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나라를 보면 걱정이 되고 눈을 들어서 세상을 바라보면 더 걱정이 된다.

만약 나에게 신적인 절대권력이 쥐어진다면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붙잡아놓고 ‘이놈들! 내 작품을 망가뜨리지 마!’하고 호통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는 미얀마에도 있고 아프가니스탄에도 있다.

그 옆을 지나가다가 붙잡히면 죽는다.

편안하게 잠을 자야 할 침대가 불안하게 목숨을 앗아가는 도구가 되고 말았다.

침대에 딱 맞아야 살 수 있다는 완벽한 기준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혹시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를 우리 집에 들여다 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간밤에 꿈에서 아들이 나타났는데 “아빠는 집에만 오면 잔소리한다.”라고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침대 하나를 들여다 놓은 것이다.


우리가 불평하는 이유, 화를 내는 이유, 괴로워하고 의기소침한 이유는 내가 만든 침대에 사람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남이 만든 침대에 나를 맞추려고 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러나저러나 침대에 딱 맞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침대를 치워버리고 넓은 방바닥을 뒹굴게 하면 어떨까?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굴러다니면 몸도 마음도 편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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