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사람을 키우려면 100년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가르친 것들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
긴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난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친다는 아이는 위인전에서나 나온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다.
숟가락질을 가르쳤는데 돌아보니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아이는 없다.
가보지 않은 길을 꿰뚫어 볼 수 없듯이 배우지 않은 것을 알 수는 없다.
이미 배운 것을 밑받침으로 삼아서 한 계단 두 계단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교육이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순간에 뉴턴이 중력의 법칙을 깨우친 것이 아니다.
그전에 뉴턴은 이미 수학과 과학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배웠다.
그 지식을 가지고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현상에 대입해본 것이다.
현상을 이해하고 수학적 지식으로 계산하면서 또 하나의 위대한 지식을 발견한 것이다.
나무 한 그루를 심으려고 해도 10년을 내다보아야 한다.
씨앗을 심고 싹이 나고 그 싹에서 줄기가 자라고 가지를 뻗고 꽃과 열매를 맺으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하지만 씨를 심었다고 해서 다 싹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씨는 말라비틀어지고 어떤 씨는 물에 불어 죽는다.
심었다고 다 나는 것은 아니다.
과일나무를 옮겨 심어도 3~4년은 기다려야 한다.
열매가 나왔다고 곧 따먹으면 안 된다.
나무를 키우려면 열매로 가는 영양분을 제어해야 한다.
열매가 아깝지만 영글기 전에 다 따서 없애기도 하고 무성한 가지가 아깝지만 가지치기도 해야 한다.
긴 시간 동안 관심을 가지고 돌보면서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나무가 그 땅에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사람을 가르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오랜 관심과 돌봄 끝에 어느덧 의젓하게 성장하고 자란 것을 보게 된다.
나무를 심는 것도, 사람을 가르치는 것도 긴 시간을 바라보며 계획을 세운다면 한 나라를 세울 때는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할까? 고려를 세운 왕건도,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그 왕조가 오래가기를 바랐다.
중간에 왕조가 끊기면 백성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자기 후손들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하들도 마찬가지다.
왕조가 바뀌면 자기 집안이 몰살당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나약한 왕조일지라도 그 왕조가 유지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왕 앞에 엎드려 “만세, 만세(萬歲)”를 외쳤다.
물론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천세, 천세(千歲)”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왕조가 천년만년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미흡했던 법과 제도를 조금씩 다듬어갔다.
그래서 한 100년쯤 지나 제대로 나라의 꼴을 갖추었다.
그때의 임금을 흔히 ‘성종(成宗)’이라 부른다.
고려도 그랬고 조선도 그랬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다.
아프가니스탄이 대 혼란을 겪고 있다.
뉴스를 통해 바라보는 우리도 정신이 없다.
앞으로 전 세계 힘의 지형이 바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난민이 될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9.11테러, 빈 라덴, 알카에다, 탈레반, 악의 축, 전쟁, 20년 전에 들었던 말들이 다시 떠오른다.
지난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을 바꾸려고 했다.
실패했다.
아프가니스탄의 국민성이라고 핑계를 대려고 한다.
국민성이 아니라 무모한 계획이었다.
명분을 앞세워서 힘으로 정리하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민족과 종교를 고려하지 못한 처사였다.
어정쩡하게 손을 댔다가 이제 손을 떼면 그 후폭풍이 얼마나 클지 생각하지 못했다.
한 나라의 운명을 가지고 20년도 내다보지 못했다.
돈 잃고 사람 잃고 아프가니스탄도 잃었다.
잃은 것 투성이의 상처만 남았다.
아프가니탄이여! 아프가니스탄이여!
++사진 출처 : 노컷뉴스(https://news.v.daum.net/v/20210817100903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