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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10. 2021

가끔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본다


휴가철이라 동료들이 번갈아가면서 사무실을 비운다.

사람 한두 명 없다고 해서 사무실이 마비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된다.

사람은 비워도 일은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떠난 이의 일을 맡아야 한다.

단순 사무직이어도 남이 하던 일을 맡는 것은 곤혹스럽다.

떠난 이의 일하는 방식과 내가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


떠난 이는 정성껏 차곡차곡 잘 정리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을 수가 있다.

단순한 사무적인 일이라면 그래도 어떻게든 해나가면 되는데 기술적인 일은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그가 떠나기 전에 업무 인수를 잘 받아야 한다.

물론 해왔던 사람은 쉽게 말을 한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요. 어렵지 않아요.”라고 말이다.

그가 보는 앞에서 해보면 쉽다.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나 모르니까 매뉴얼을 한 부 만들어 두라고 한다.

이제 걱정할 것 없다.




하지만 막상 그가 떠나고 나면 그가 했던 일이 쉽지 않게 다가온다.

그래서 혼자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 연습을 해 본다.

그가 옆에 있을 때는 술술 잘 풀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 혼자 앉아 있으니까 일이 막힌다.

‘이게 아닌데, 왜 안 되지?’ 당황스럽다.

생전 처음 대하는 일처럼 여겨진다.

엊그제까지 분명히 완벽하게 일을 익혔는데 이상하게도 펑크가 난다.

상황이 조금만 흐트러지면 그 상황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때를 위해서 준비한 매뉴얼을 꺼내 본다.

매뉴얼에 적힌 내용대로 될 때는 괜찮다.

그런데 항상 돌발상황이란 게 있다.

매뉴얼에도 적혀 있지 않은 비상 상황 말이다.

그런 때에도 일이 틀어지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나를 짓누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이 연습이라는 사실이다.

그에게 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하려다가 어찌어찌 방법을 찾아냈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고 할 때가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입장이 바뀌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다고 해서 그의 삶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의 삶을 모르면 그의 입장도 모른다.

그의 삶을 살아봐야만 그의 입장을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그가 했던 일을 해 보는 거다.

나로서는 짧은 기간이지만 1년에 며칠은 다른 사람의 일을 해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또 다른 좋은 방법이 있다면 역시 책읽기이다.

이 부분에서는 여러 책 중에서 소설책이 제일이다.

내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주인공의 말을 따라 해보고 주인공의 생각을 내 생각 속에 넣어보는 거다.

그래서 소설을 많이 읽으면 여러 인생을 살아보는 것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다양한 삶을 경험하기에 그만큼 인생을 넓고 깊게 보게 된다.




책 읽는 사람보다도 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사람이 있다.

책을 쓰는 사람이다.

책을 쓰는 사람은 등장인물을 한 명 제시할 때마다 그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집안 환경과 성장 배경들은 어땠는지 곱씹고 곱씹을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는 블룸이라는 사람이 1904년 6월 16일 하루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걸은 길과 들른 장소들, 만난 사람들과 얘기한 내용들, 그리고 블룸의 머릿속에 떠오른 오만 잡다한 생각들을 모아서 <율리시스>라는 책을 썼다.

하루 동안 제임스 조이스의 인생이 아닌 블룸의 인생을 살아본 것이다.

지금도 아일랜드 사람들은 해마다 6월 16일을 블룸의 날(Bloom’s Day)이라고 해서 <율리시스>를 들고 블룸의 길을 걸어본다고 한다.

삶이 너무 무미건조하다고 느껴진다면 가끔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

그의 일을 해 보고 그의 생각대로 살아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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