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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19. 2021

일찍 핀 꽃이 일찍 진다

    

오래된 컴퓨터를 버리기가 아까워서 몇 가지 부품들을 바꾸고 사용할 사람이 있나 찾아보고 있다.

메모리를 추가하고 하드디스크를 SSD로 바꾸면 컴퓨터의 속도가 빨라져서 기계에 둔감한 사람이라면 그리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무실이나 집에서 인터넷 검색과 문서작업 위주로 하는 컴퓨터는 굳이 좋은 성능일 필요가 없다.

이만하면 조금 더 쓸 수 있다.


사실 이 컴퓨터도 구입할 당시에는 최신이었고 괜찮다고 했던 제품이다.

뽀대가 났고 성능도 좋았다.

처음에는 잘 사용했다.

잘 사용할 정도가 아니라 컴퓨터가 너무 좋아서 프로그램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순간에 화면이 싹 바뀌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달리기 하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있는 힘껏 달리다가 차츰 천천히 뛰는 것처럼 컴퓨터도 그렇게 변해갔다.

그리고 이제는 구닥다리가 되었다.




컴퓨터를 버리기 아까운 가장 큰 이유는 구입가격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걸 얼마에 샀는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성능이 안 좋은 제품도 그 당시에는 꽤 비싸게 돈 주고 샀다.

그 돈으로 지금 제품을 산다면 몇 배나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옛날 사람들은 별것도 아닌 것에 엄청 돈을 들이며 살았다.


전화기만 보더라도 그렇다.

지금은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맘 놓고 전화통화를 해도 전화요금이 안 나간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치도 못했을 일이다.

국제전화 한 번 하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용건만 간단히 하려고 애를 썼었다.

지금은 뭐, 목소리뿐만 아니라 아예 영상통화를 한다.

그것도 매일매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시절이 많이 바뀐 것이다.

과거에 찬란했던 것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영화가 퇴색하고 유물로 자리매김을 했다.

이 컴퓨터도 그렇게 영화로운 시간을 다 보내고 이제 구닥다리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서 효용이 떨어지는 것은 컴퓨터 같은 물품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인생도 태어나서 성장하고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힘이 약해지는 인생곡선을 그린다.

기업체도 마찬가지이고 한 나라의 흥망성쇠도 이와 비슷한 곡선을 그린다.

부지런히 산 정상에 올라가면 그다음에는 내려가는 길만 보인다.

인정해야 한다.

오르막길만 걷는 사람은 없다.

오르막길이 내리막길이 된다는 사실은 그 자리에서 살짝 몸을 돌려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천년만년 변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유명세를 누렸던 연예인들도 무대에서 내려올 때가 있다.

화려한 플래시와 환호성을 받았던 운동선수들도 은퇴하고 코트를 떠날 때가 온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니다.

박수를 받을 때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에 <서구의 몰락>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유럽 사회가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머지않아 쇠퇴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예언과도 같은 말을 풀어놓았다.

사람들이 발끈할까 봐서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 인도, 중국 문화도 발생, 성장, 성숙, 몰락의 단계들을 거쳤다고 했다.

유럽이라고 해서 이 길을 피해갈 수 있을 것 같냐며 따끔하게 충고하고 있다.

역사 속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제국들을 보라고 했다.

유행했다가 땅속에 파묻힌 문화들을 살펴보라고 했다.


이 땅 위에 영원한 것은 없다.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

지금 남들보다 힘이 세다고 자랑할 게 아니다.

그 남아도는 힘을 잘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힘이 약해졌을 때 당황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앞서간다고 해서 우쭐댈 게 아니다.

일찍 핀 꽃이 일찍 진다.

기왕이면 천천히 피었다가 천천히 지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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