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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21. 2021

산다는 게 뭐냐고? 그건 나의 의무이다!


일본의 여류 소설가 미우라 아야꼬의 책들을 탐독했던 적이 있었다.

교회에 목사님들이 하도 ‘빙점’이라는 소설 얘기를 많이 해서 도대체 어떤 책인가 하고 읽었다가 내친김에 그녀의 다른 글들까지 주르륵 훑었다.

솔직히 미우라 아야꼬의 책을 접하기 전에는 일본 작가들의 책을 보지 않았다.

일본 작가들의 책은 그냥 싫었다.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그녀가 1920년대에 태어났으니까 아무래도 그녀의 생각도 제국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오해를 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자서전적 수필집들이나 소설 <총구>를 보면서 나의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특히 <총구>는 일제강점기에 징용의 피해를 입은 조선인을 등장인물로 삼았기에 엄청 충격을 받았다.

비록 소설이지만 모든 일본인들이 제국주의에 찬성한 것이 아니며 조선인을 안타깝게 여기고 도움을 베푼 일본인들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책들 속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주제는 ‘생명의 소중함’이다.

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남의 생명도 소중하다.

누가 누구에게 총구를 겨눌 수 있느냐?

누가 누구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이다.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매일 문을 열고 불을 켜놓고 잠을 자는 부모가 있다.

잘못한 자식에게 야단치는 것보다 그냥 끌어안아주는 것이 더 낫다.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사랑을 베풀어라.

삶과 죽음의 순간에 떠오르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살 수 있다.

이런 내용들인데 책들마다 이 내용들을 기가 막히게 잘 엮어가고 있다.

전직 학교 선생님이었기에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을 수 있겠다.

2차 대전 후 피폐한 시절을 살아가다보니 전쟁과 평화에 대한 깊은 고뇌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더 피력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녀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준 가장 큰 사건은 ‘아픔’이었다.

그녀는 꽃다운 청춘인 20대 초반에 폐결핵을 앓았다.

당시 폐결핵은 죽음에 이르는 질병과 같았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서 생사를 오갔던 소녀의 아픔도 폐결핵이었다.

미우라 아야꼬는 결핵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13년 동안 침대에서 누워 지내야 했다.

청춘을 다 날려버린 것이다.

언제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비참한 시간들이었다.

인생이 헛되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빨리 죽음이 오기를 기다렸다.

매사에 회의적이었고 부정적인 언행을 일삼았다.

그러던 그녀에게 친구가 찾아와서 살아야 한다고 말을 했다.

그 당시 그녀는 신앙인도 아니었다.

그런데 친구는 그녀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무야.”

라고 말을 해 주었다.

생명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의무라는 말이 그녀를 바꾸었다.




우리가 꼭 수행해야 하는 일이 의무이다.

말 뜻 그대로 ‘의무(義務)’는 의로운 일이고 올바른 일이다.

힘들지만, 고되지만, 포기하고 싶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그게 올바른 일이다.

우리는 거창한 일을 해 내어야만 맡겨진 의무를 다한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

실적을 내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우리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실패하거나 실수하면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그런 눈으로 보면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는 미우라 아야꼬 같은 사람은 일찌감치 의무를 저버린 사람이다.

그런 생각으로 자기 인생을 평가하면 ‘도대체 산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해야 하는가?’하는 비관만 한다.


산다는 게 뭐냐고?

그건 나의 의무이다!

대단한 일, 위대한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산다는 것 자체가 올바른 일이다.

힘써 해나가야 할 나의 의무(義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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