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속에서 쉼을 찾고 일한 다음 쉼을 얻는다

by 박은석


트리나 폴러스(Trina Paulus)가 쓰고 그린 노란색 작은 동화책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있다.

알에서 깨어난 줄무늬 애벌레는 하루하루 먹고 자기만 하면서 몸만 살찌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줄무늬 애벌레는 더 나은 생활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러다가 하늘 끝까지 솟아있는 커다란 애벌레 기둥을 보았다.

그 기둥 꼭대기에 올라가면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편안히 쉬면서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꼭대기에 올라가려는 애벌레들이 너무 많았다.

다른 애벌레들보다 먼저 올라가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애벌레들을 잡아당기고 밟고 가야만 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열심히 올라왔는데 막상 꼭대기에 오르고 보니 한숨만 나왔다.

“이게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그 꼭대기는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애벌레는 ‘이제는 뭘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품게 되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우리가 편안히 쉴만한 곳은 없다.

돈을 많이 벌어서 큰 집을 지으면 그 안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지만 누가 이 집에 침입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그래서 담장을 높이 쌓고 방범 카메라도 더 많이 설치한다.

근사한 리조트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늘어지게 게으름을 부리며 휴가를 보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집에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린다.

휴가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아쉬워하기만 한다.

제대로 쉬는 게 아니다.


‘이 일만 끝나면 편안해질 거야.’라고 생각하는데 그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이 생긴다.

내 인생은 결코 나를 편안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몸종처럼 부려먹고 또 부려먹는다.

여태 일할만큼 일했으니까 이제는 쉬면서 여유 있게 지내자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

일 안 하고 놀고먹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노는 건 쉬운 줄 아니?”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일 안 하고 빈둥대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다.

쉰다는 말에는 먼저 일을 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열심히 일을 한 다음에라야 쉬는 시간이 오는 것이다.

“요즘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고 물을 때 상대방이 “예, 쉽니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자신이 쉬고 있다고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말이 입 밖에 잘 나오지 않는다.

자랑스럽게 말하기가 어렵다.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제대로 된 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 쉬는 것이 아니라 고역이다.

‘실직’이다.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린 것이다.


사람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끔 태어났다.

그래서 일정한 나이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 떠난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에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를 한다.

일이 곧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준다.

일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기 때문에 막상 일을 그만두면 존재감을 상실한다.




김진명 선생의 <고구려> 5권에서는 밭을 가는 소가 주인이 죽자 그 곁을 떠나지 못한 채 굶주려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는 더 이상 자신을 부려먹는 주인이 없으니 매 맞을 일도 없고 쟁기질을 할 필요도 없다.

자기 맘대로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런데 소는 그러지 못한다.

주인에 대한 충정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주인이 소를 부려먹은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소는 주인을 위해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주인의 보호를 받으며 먹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주인이 훌쩍 떠나버리니 소는 더 이상 살아갈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책에서는 그 주인을 나무랐다.

자기가 죽기 전에 소에게 살아갈 방법을 마련해 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일거리가 없게 되자 소는 망연자실해서 주인의 주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다.

일은 누구에게나 고되지만 누구나 일 속에서 쉼을 찾는다.

일한 다음 쉼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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