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기도 하지만 꿈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by 박은석

고등학교 3학년 늦가을에 대학 진학 원서접수가 시작되었다.

학력고사 시절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대학 학과에 지원해서 대입수험일에 그 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렀다.

전후기 분할제가 시행되었기에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면 후기에 모집하는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다.

100만 명 넘게 시험을 치르고 20만 명이 합격하던 시절이었다.

재수했다고 해서 더 좋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가 어려웠다.

맘에 안 들더라도 후기 입시에 지원해야 했고 합격하면 그냥 그 학교에 다녔다.


흔히 말하는 일류대학은 전기 모집만으로도 성적 좋은 학생들을 모집할 수 있었다. 내가 나온 대학은 전기에 절반의 학생을 받았고 후기에 또 절반의 학생을 받아서 정원을 채웠다.

후기에 합격한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나도 그 학교에 갈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어느 대학에 진학하느냐에 따라 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부터 일기장에 어느 대학 무슨 학과에 진학할 지 적어두었다.

그중의 한 학교를 택해서 내 마음속 ‘꿈’으로 정했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오직 그 학교 그 학과만 바라보았다.

모의고사 결과가 나오면 그 학과의 정원 30명 안에 내가 늘 들어 있었다.

딱 한 번 빼고.

그 정도면 그 학교 그 학과에 지원하면 된다.

합격 확률 90프로 이상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막상 원서접수가 시작되자 담임선생님께서 나에게 다른 학교를 알아보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한 명이라도 더 합격시키고 싶은데 불안하다는 거였다.

그 학교 그 학과에 경쟁률이 높아질 것 같다는 거였다.

원서접수 마감일이 되면 서울에 사는 아이들은 경쟁률이 낮은 학과에 지원할 수 있었다.

입학원서를 여러 장 준비해서 식구들을 몇 개 학교에 배치하고 눈치를 보다가 마감시간에 한 학교에 지원하였다.

학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학교 이름이면 되었다.




선생님의 물음을 듣고 잠시 망설였다.

그동안의 내 꿈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내가 꿈꾸었던 대학과 꿈꾸던 학과를 갈 수 없으면 ‘그럼 나는 어디로 가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다른 대안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집에 가서 상의할 수도 없었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처음으로 대학 진학을 하는 상황이었다.

나의 진로에 대해 조언해줄 사람이 없었다.

나 스스로 공부하고 나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사범대에 가겠습니다. 학교는 선생님께서 정해주십시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다음 날 원서를 구입해서 마감 일주일 전에 우편으로 보냈다.

제주도에 사는 우리는 눈치 같은 것은 볼 수도 없었다.

학력고사 점수가 꽤 괜찮게 나왔다.

내가 꿈꾸던 학교의 그 학과에 들어가고도 남을 점수였다.

담임선생님이 원망스러웠냐고?

그렇지 않았다.

선생님은 최선을 다하셨다.

이제는 내가 새로운 꿈을 만들어갈 일만 남았다.




오랫동안 꿈꾸던 일이 나에게 해당되지 않아서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왕자로 태어났는데 하필 큰아들이 아니라 셋째아들로 태어났다면 무슨 꿈을 꿀 수 있을까?

왕자의 꿈은 왕이 되는 것인데 셋째아들이면 그 꿈을 이루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두 명의 형님들을 제치고 왕이 될 확률은 기대하지 않는 게 낫다.

그렇다고 왕자가 과거시험을 치를 수도 없다.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난 뭘 하지? 내 꿈은 뭐지?’

때때로 인생은 우리에게 꿈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꿈을 꾸지 못하게 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꿈이 보인다.

우리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꿈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셋째아들인 이도(李祹)는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했고 얼떨결에 세종대왕이 되었다.

한국어교육과에 진학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공부를 했고 얼떨결에 이렇게 살고 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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