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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28. 2021

열매는 나무가 살아낸 날의 보상이다


참 고마운 분께서 복숭아 한 상자를 보내주셨다.

한 입 베어먹었더니 달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날씨 탓에 열매가 더 달아진 것 같다.

이육사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노래했는데 나는 8월을 복숭아가 잘 익은 계절이라고 하겠다.


8월이라고 해서 복숭아가 다 잘 익는 것은 아니다.

복숭아꽃 살구꽃 피는 계절이 오면 때에 맞춰서 꽃을 피워야 한다.

끊임없이 날아드는 병균과 곤충의 공격을 견뎌내야 하고 긴 강마와 여름의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

열매가 송골송골 익어갈 때쯤이면 여지없이 강한 태풍이 찾아온다.

견뎌내야 한다.

견뎌내지 못하면 그동안의 모든 고생이 헛수고이다.

그렇게 견뎌내어야 비로소 제맛을 내는 한 알의 복숭아가 포장되는 것이다.

그냥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잎이 나고, 열매가 맺히고, 영글어서 우리 집에 오는 것이 아니다.

열매는 나무가 살아낸 날에 대한 보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병충해가 없으면 좋겠다고, 비바람이 없으면 좋겠다고, 여름의 장마와 뙤약볕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무에게는 열매도 없다.

복숭아 한 알 속에는 싫어했던 것도, 미워했던 것도, 힘들게 했던 것들도 다 들어있다.

그것들을 고스란히 받아서 안에서 조금씩 녹여갔더니 달콤한 복숭아가 된 것이다.

병충해도, 비바람도, 뜨거운 햇살도 복숭아에게 다 필요했다.

그것들은 버릴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견디어내면 다 이득이 되는 것들이다.

그 순간을 지낼 때는 안 좋게 여겨졌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열매를 맺을 때에는 좋은 열매가 되게 하는 요소가 된다.


안 좋은 환경을 막아준다며 비닐하우스 안에 나무를 옮겨심기도 한다.

그러면 원하는 만큼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온실 안의 열매와 노지에서 얻은 열매는 비교할 수가 없다.

양식 생선이 아무리 번지르르해 보여도 자연산 생선의 깊은 맛을 따라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나무가 살아낸 날의 보상으로 열매를 맺듯이 사람에게도 인생을 살아낸 보상으로 얻는 인생의 열매가 있다.

오랫동안 공부하는 아이는 좋은 성적의 열매를 얻고, 운동장에서 부지런히 공을 차는 아이는 좋은 실력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저절로 성적이 오르고 저절로 공을 잘 차게 되는 것이 아니다.

견뎌내어야 한다.


과일나무는 과일을 잘 맺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

그 사명을 감당해나가는 과정에서 병충해로 온몸에 상처가 나기도 한다.

비바람에 이쪽으로도 흔들리고 저쪽으로도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뿌리를 잘 박고 있어야 한다.

뽑히면 안 된다.

견디어야 한다.

흔들리면 땅속 깊숙이 더 뿌리를 내리고 흙을 꽉 움켜잡아야 한다.

죽을 것처럼 아프고 따갑더라도 몇 가닥의 가지가 꺾여나갈지언정 포기하면 안 된다.

살아내야 한다.

열매를 맺어야 한다.

열매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살아온 날들을 알 수가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계몽주의 작가인 볼테르는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라는 책에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고 있다.

살던 곳에서 쫓겨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면, 전쟁에 끌려간다면, 노예가 된다면, 어처구니없이 범법자가 된다면, 가난하게 된다면, 갑자기 일확천금을 얻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추해진다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 눌려서 환경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놔둘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하지만 볼테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곤란한 상황일지라도 삶은 소중하다. 그러니 살아내야 한다. 살아내면 다 좋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라고 끝을 맺었다.

"오늘은 오늘의 밭을 갈아야 한다.

그래야 열매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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