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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07. 2021

하나를 알면 하나를 잃는다


세상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교실이다.

그 교실 안에서 배울 게 너무 많다.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교실에 들어섰을 때 모든 게 낯설었다.

하나하나 다 배워야 했다.

어디서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하는지,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인지, 밥 먹는 시간은 언제인지, 선생님께 인사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모두 다 배워야 했다.

배울 것 투성이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도 계속 배워야 했다.

사소해 보이는 일도 조직에서 처리하는 방식이 있었다.

윗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배워야 했고 말과 글로 보고하고 처리하는 방법도 배워야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대로 해도 별 무리 없이 일처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을 접어두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야 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배울 게 있었다.

세상은 배워야 할 것으로 가득 찬 교실이었다.




‘이런 것도 배워야 하나?’ 

‘이런 것은 배워서 어디에 써먹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모르는 것보다 알고 있는 게 훨씬 낫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은 어설프게 아느니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는 식의 자위적인 말일뿐이다.

확실하게 알고 나면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처럼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한다.

배울 수 있을 때 물불을 가리지 말고 배워야 한다.


일평생 배우고 또 배워도 세상의 지식을 다 얻을 수 없다.

엄청난 학자라고 하더라도 자기 뇌의 고작 몇 퍼센트밖에 쓰지 못하고 간다.

많이 배웠으니까 이제는 됐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이유다.

만약 기술이 있어서 우리의 뇌를 해부해 보면 여전히 깨끗할 것이다.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부분이 꽤 넓을 것이다.

창조주는 우리에게 잘 사용하라고 뇌를 주셨건만 우리는 그 뇌를 고이 모셔두고 있다.

배우지 않아서 그렇다.




내가 왜 배우지 않으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더니 한 가지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식이 내 머릿속에 들어오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 중에서 하나는 내 머릿속에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 성씨인 박씨의 시조는 신라의 초대 왕이었던 박혁거세다.

알에서 나왔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게 신화이고 토템이고 영웅화시킨 거라는 말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사람이 알에서 나온다는 게 말이 되는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을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 생긴 것이다.

그 순간 내가 알고 있었던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를 버려야 했다.

제대로 된 지식을 알았으니 무지를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박씨 가문 사람이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를 놓아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뿌리가 흔들리는 큰 일이었다.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는데도 안 보낸 어른들이 있었다.

학교에 가면 일을 못하고 일을 못하면 먹고살기 힘들다고 했다.

공부하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고 했다.

미국의 몰몬교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타라 웨스트오버의 집안도 그랬다.

초중고등학교를 구경도 못했다.

집에서 배운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을 들으며 성장했다.

그러던 그녀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학으로 공부하여 대학에 들어갔다.

배울 것 가득한 세상으로 나왔다.

그녀는 새로운 것을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집에서 배운 가르침을 하나씩 잃어가야 했다.

너무 정들어서 놓기 싫었지만 그녀는 하나씩 놓았고 새로운 것을 하나씩 잡았다.

그 긴 배움의 여정이 <배움의 발견>이란 책에 쓰여 있다.


하나를 알면 하나를 잃을 수 있다.

그래도 배워야 한다.

세상은 배울 게 가득한 거대한 교실이고 우리는 그 안에 있다.

그 배움의 교실에서 계속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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