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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08. 2021

뿌리를 찾아 나서기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를 좋아했던 아이가 있었다.

외할머니는 타고난 이야기꾼처럼 이 얘기 저 얘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셨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반복해서 손자에게 자신의 가족이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와서 살게 되었는지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손자의 마음속에 조용히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면 할머니의 할머니는 어떤 분이셨을까?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는 어디에 사셨을까?’

누구나 한 번쯤 갖는 생각인데 소년에게는 그 생각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10여 년이 흐른 후 청년이 된 소년은 자기 가족의 뿌리를 찾아 나서기로 하였다.

그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그 이야기가 실제로 펼쳐졌던 당시의 역사적인 자료들을 하나씩 조사해나갔다.

오랜 연구 끝에 그는 200년 전에 살았던 자신의 7대 조상의 이야기까지 밝혀내게 되었다.

알렉스 헤일리의 작품 <뿌리>의 이야기이다.




알렉스 헤일리는 이 작품 <뿌리>를 통해서 그 옛날 1700년대 중반에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서 미국으로 팔려온 자신의 7대 조상 쿤타킨테를 끄집어내었다.

그로부터 시작하여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살다 간 자신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절망의 벽 앞에 섰었던 조상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면 함께 울부짖었고, 

희망을 노래하며 웃고 춤추던 모습이 떠오르면 함께 웃고 춤을 추었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가족 역사를 찾아 나선 이유는 자신의 뿌리를 알아야 자신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의 생각은 빗나가지 않았다.

누가 봐도 절망적인 상황이었던 조상들은 자신들의 후손들을 보면서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그 조상들을 바라보면서 후손들은 꿈을 꾸었다.




뿌리(Roots)는 식물의 생명선이다.

뿌리는 생명에 잇닿아 있고 생명을 이어주고 생명을 태동시켜준다.

비록 가느다란 선이지만 뿌리가 죽으면 제 아무리 거대한 나무라 하더라도 곧 말라비틀어지고 만다.

뿌리가 뽑히면 죽는다.

그러기에 나무는 제 뿌리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바위틈에도 헤집고 들어가며 건조한 땅에서도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면서 뿌리를 살리려고 한다.

뿌리를 잃으면 다 잃게 되기 때문이다.

뿌리가 살아야 나무가 살 수 있다.

뿌리가 곧 생명이다.


한 가닥의 뿌리로는 나무를 건사하기 어렵다.

그 한 가닥의 뿌리가 잘리면 끝나기 때문에 뿌리는 가지치기 하듯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진다.

그리고 그 갈라진 뿌리들이 얼기설기 얽혀서 나무를 지탱해준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나무의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와 꽃과 열매이다.

그 바닥 땅속에 있는 뿌리는 보지 못한다.

그러나 뿌리가 곧 그 나무이다.




나무가 하늘 높이 마음껏 올라갈 수 있는 것은 뿌리가 든든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뿌리는 그런 나무를 보고 흐뭇해하면서 땅속으로 더 깊이 내려간다.

뿌리가 깊이 내려갈수록 나무는 더 높이 올라간다.

쿤타킨테의 가족은 그 사실을 알았다.

삶으로 체득했다.

내가 더 깊이 내려가면 내 후손들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였다.

절망스런 상황이라며 마냥 절망할 수는 없었다.

절망의 벽이 높으면 높은 만큼 희망도 높아진다.


뿌리가 자기도 살겠다며 땅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

뿌리가 땅속으로 내려가야 나무가 산다.

나무는 뿌리의 희생과 헌신으로 산다.

뿌리를 찾아보면 안다.

찬란한 나무의 삶은 처참하게 헝클어진 뿌리 덕분이다.

언젠가 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 열매가 잘 영글면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열매는 다시 뿌리를 내린다.

나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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