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도 도돌이표가 있다면...

by 박은석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인슈타인의 주장대로라면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면 지나버린 시간을 쫓아가서 되돌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부끄러웠던 그날로 돌아가서 내가 저지른 실수와 잘못을 범하지 않을 텐데.

그때 선택한 방법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택할 텐데.

그것뿐인가?

내가 슈퍼맨도 되고 배트맨도 되어서 지구 곳곳에서 일어난 잘못된 결정들을 바른 방향으로 돌려놓을 텐데.

아쉽다.


천상병 시인은 <날개>라는 시에서 “하느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라고 외쳤는데 그 마음이 내 마음이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빛보다 더 빨리 날아갈 수 있는 날개가 있다면 어디든지 날아가서 좋은 일 실컷 하며 한평생 살겠다.

그런데 만약 나에게 그런 날개가 생긴다면 그땐 정말 바쁠 것 같다.

그때는 온갖 오지랖을 다 떨어야 하니 눈코 뜰 새가 없을 것 같다.




시간을 거슬러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잘못과 실수를 되돌릴 수 있을까?

이것저것 재보다가 이전과 똑같은 결정을 하지는 않을까?

그게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을까?

다른 선택을 했는데 정말 엄청난 삶을 살게 된다면 그건 다 좋은 것인가?

내가 유명인이 되거나 돈과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땐 좋은 것인가?

어쩌면 그때는 지금처럼 사는 것을 부러워하지는 않을까?


반대로 내가 선택한 결과가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지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또다시 돌아가서 지금 이 모습으로 살아가는 선택을 해야 하나?

그러면 지금의 이 모습도 좋은 거였네.

돌고 돌아서 결국 제자리이다.

싫어서 피하고 싶었던 자리, 그 자리가 내가 앉아야 할 자리이다.


그러고 보니까 구상 시인의 <꽃자리>가 생각난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 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음악 악보를 보면 노래가 끝나는가 싶은 자리에 동그란 점 두 개가 찍힌 도돌이표가 있다.

그러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 자리까지 달려온다.

똑같은 길로 오기도 하고 옆으로 살짝 틀어서 다른 길로 오기도 한다.

인생에도 이런 도돌이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날개를 갖고 싶다거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가거나 하듯이 내 인생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싫으면 되돌아가고, 잘못하면 되돌아가고, 심심하면 되돌아가는 그런 도돌이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음악 악보에서 되돌아갈 수 있는 표를 받았어도 콩나물 대가리들은 계속 되돌아가지 않는다.

무한 반복되는 음은 음악이 아니라 귀를 울리는 소음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가락일지라도 그 가락만 되풀이되면 작품이 안 된다.

듣기 싫더라도 오르락내리락하는 가락들이 있어야 서로 어우러져 작품이 된다.




‘인생에도 도돌이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은 이제 그만이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시간을 거슬러 돌아갈 수 있다면’

같은 생각도 마찬가지다.

생각해봤자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다.

멍 때리는 시간에 혼자 히죽거리고 싶을 때나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내야겠다.


도돌이표가 없어도 좋은 음악이 될 수 있다.

아니, 좋은 음악 중에는 도돌이표가 없는 음악이 훨씬 많다.

도돌이표를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새처럼 두 어깨에 날개가 없으면 어떤가?

그래도 가고 싶은 곳에 얼마든지 갈 수가 있다.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가지 못한다고 안타까워만 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

처음부터 꽃자리를 택할 수도 있지만 가시방석 같은 자리를 택하고서 그 자리를 꽃자리로 만들 수도 있다.

도돌이표만으로는 음악을 완성할 수 없다.

끝맺음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 연주가 끝난 후에야 “브라보!”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날개> - 천상병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느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 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뿐이었는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성취다.


하느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꽃자리> -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고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고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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