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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훈련과정
by
박은석
Sep 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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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강의가 일상화되면서 아이들이 집에서 수업받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기 자녀가 수업시간에 어떤 모습으로 앉아있을지 궁금할 것이다.
그래서 학부모 참관 수업 시간이 있으면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인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아이의 학교를 방문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뭔지 모를 뭉클한 기운이 가슴에 밀려온다.
교실에 들어서면 마치 수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저 자리에 마치 내가 앉아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모든 것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내 때는 이랬는데”라는 말이 연신 터져 나올 것이다.
칠판도, 책상도 모두 모두 달라졌다.
바닥에 양초 칠을 해서 걸레로 닦아내는 일도 없고, 교육감이 온다고 유리창에서 뽀드득 소리가 나게 닦는 일도 없다.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도 다르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존칭해주신다.
이럴 수가!!
학교 밖에서 선생님을 만나면 골목 안쪽으로 잽싸게 뛰어들어가 숨었다.
혹여라도 선생님이 나를 발견하시고 부르시면 무슨 큰 죄를 저지른 아이처럼 두 손을 다소곳이 하고 고개를 떨구고 잔뜩 긴장했다.
교무실에 불려간다는 것은 뭔가 큰일을 저질렀다는 증거였다.
선생님 앞에 서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임금님과 선생님과 아버지는 하나라고 배웠다.
이미 임금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었지만 임금님이 어떤 존재인지는 알 수 있었다.
“물렀거라~!” 한마디에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야만 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임금님 앞에 빳빳하게 고개를 쳐드는 사람은 없었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들도, 임금님의 눈총을 입은 궁녀들도 임금님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군사부일체이니까 임금님 앞에서 하듯이 아버지 앞에서도 선생님 앞에서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게 우리가 지킬 예절이었고 질서였다.
사람의 존재 가치는 그가 누구 앞에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되었다.
임금님이 계신 대전(大殿)에 들어선 신하는 임금님을 ‘전하(殿下)’라고 불렀다.
자신이 대전(궁궐) 아래 있다는 고백이었다.
예전에는 대통령께 ‘각하(閣下)’라고 불렀다.
우리가 대통령의 집 문 아래 있는 사람처럼 낮은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내가 상대방보다 높은가 아니면 낮은 사람인가를 따지며 살았다.
낮은 사람이면 얼른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회적인 계급구조들이 많이 자취를 감추었다.
시계의 ‘땡’ 소리와 함께 “OOO대통령 각하께서는...”으로 이어졌던 9시 뉴스의 멘트도 사라졌다.
언젠가부터는 대통령에게 ‘각하’라는 표현도 쓰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 스스로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평등사상이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의 존재 가치는 그가 누구 앞에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부모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자녀이고, 선생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학생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외쳤는데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내가 누구 앞에 서 있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자녀 앞에 서 있는 부모는 부모의 일을 해야 하고, 부모 앞에 서 있는 자녀는 자녀의 일을 해야 한다.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가 없다.
오직 나 스스로가 해야 한다.
아끼는 제자라고 해서 그 제자를 대신해서 시험을 치러주는 사람은 선생이 아니다.
자신이 누구 앞에 있는지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자이다.
나를 찾아가는 훈련과정은 내가 누구 앞에 서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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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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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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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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