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나? 우리는 무엇으로 살까?

by 박은석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누구나 자기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기를 원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려면 이만큼은 해야 한다는 정보가 나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들어가야 사파리 같은 세상에서 괜찮은 직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들 한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나는 옆에서 초치는 소리를 한다.

"그래 봐야 대부분 월급쟁이인데..."

"마흔 살 넘어가면 직장 나올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일찌감치 자기 기술을 가지고 장사를 하든지 자기 일을 하는 것도 좋지."라고 한다.


그런데 자기 기술이나 일이나 재능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일들도 정보가 있어야 하고 지식이 있어야 하고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공부해야 한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로 자녀 교육의 문제는 정답이 없다.

내 때에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직업이 자녀 세대에는 필요 없어질 수도 있다




해방 이전의 소설을 보면 신여성이라 불리는 지식인들에게 가장 선호도가 높았던 대학 학과는 '가정과'였다.

그렇게 보인다.

가정과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그 학과에서 무슨 공부를 가르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짐작은 간다.

가정을 잘 꾸려나가기 위한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지식과 기술을 배웠을 것이다.

지금도 이런 학과가 대학에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분 중에는 서울의 일류대학 서예과를 졸업했다고 하셨다.

그때는 글씨만 잘 써도 먹고살기에 충분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하기는 내 어릴 적만 해도 관공서 옆에 글을 대신 써주는 '대서소'가 있었다.

글씨가 똑바르지 못하다며 아버지에게 야단맞았던 기억도 있다.

중학생이 되면 펜글씨를 배워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글씨가 밥 먹여주었던 시절이었다.

그보다 앞선 조선시대는 오죽했을까?

한석봉의 어머니가 아들의 글씨체를 보고 야단치실만 했다.




바느질 솜씨가 없어도 가정을 잘 꾸려나간다.

글씨를 개발새발 쓰더라도 번듯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내 글씨도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국보급 악필이다.

하지만 잘 먹고살고 있다.

글 쓰는 시대가 아니라 글 치는 시대가 되었다.

전에는 책에서 좋은 지식을 찾으면 밑줄을 긋고 받아 적고 달달 외워서 내 지식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어 그게 뭐더라, 어디서 봤는데'

그러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된다.

검색해서 정보를 찾아낸다는 '구글링'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이다.

과거에는 지식을 소유했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지식을 공유하는 시대이다.


그 시대는 맞았고 지금은 틀리다고 할 수 없다.

또 이 시대의 것이 다음 시대에도 들어맞을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러니 아이들은 자기들 세상에 맞춰서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누구나 자기 밥그릇은 다 챙긴다고 하지 않는가?




이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채워지면 그 위에 또 다른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맨날 아쉬움이 남는다.

나에게 없는 것만 계속 보인다.

그런데 어딘가 아파 보면 알게 된다.

그토록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 부질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픈 사람에게 소원은 딱 한 가지다.

건강이다.

공부를 못해도 괜찮다.

솜씨가 없어도 괜찮다.

건강만 되찾으면 원이 없겠다고 한다.


사랑을 잃어보면 안다.

돈도 유명세도 사랑을 대신하지는 못 한다.

죽을 것 같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왜 애들을 많이 낳느냐고 말들을 한다.

어떻게 키울 거냐고 한다.

남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사랑으로 산다.

흥부네 집은 자식들이 가득하고 놀부네 집은 자식에 대한 말이 없다.

"가진 것 많은 사람은 그 가진 것으로 몸을 감싸고 살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은 빈 몸뚱아리에 사랑을 감싸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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