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말에 속아서 살아왔다

by 박은석


톨스토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다고 하는 책 <안나 까레니나>의 첫 구절은 너무 유명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행복한 가정이라고 보이는 가정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비슷하다.

가정의 경제적인 상태나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 겉모습은 다를 수 있지만 가족 구성원들 간의 유대관계를 보면 흔히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가정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웃음이 많다.

대화가 많다.

격려해주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표현을 많이 한다.


반면에 불행한 가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다.

경제적인 상태나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 불행의 강도가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 구성원들의 유대관계가 너무 약하다.

역시 불행한 가정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가정에는 웃음, 대화, 격려, 용서와 사랑의 표현 같은 것들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친한 관계가 가족관계인데 세상에서 제일 꽉 막힌 관계가 또한 가족관계가 되곤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먼 사람이 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하신 적이 있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촌수를 재보면서 얼마나 자기와 가까운 관계인지 살피곤 했다.

부모 자식 사이는 일촌이고, 형제자매 사이는 2촌이며, 부모의 형제와 나와의 관계는 3촌이고, 내 자녀와 형제자매의 자녀 사이는 4촌이다.

이렇게 촌수는 한 사람을 건너갈 때마다 점점 멀어진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부부사이에는 촌수가 없다.

무촌이다.

0촌이다.

그야말로 딱 붙어 있는 관계다.

부부는 일심동체, 한 마음과 한 몸이다.

부부끼리는 티격태격하더라도 누가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서 깝죽대면 어딜 감히 끼어드느냐며 가만두지 못한다.

딱 붙어 있는 그 친밀한 관계에 조금이라도 틈이 벌어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친밀하다는 게 도대체 어떤 것일까 생각하다가 한자어 ‘친밀(親密)’이라는 말을 한 글자씩 떼어내서 파자해보았다.

‘친(親)’자는 친하다는 뜻도 있지만 어버이라는 뜻도 있다.

나무(木) 위에 서서(立) 자식이 어디쯤 오나 바라보는(見) 사람이 친한 사람이고 할 수 있겠다.

‘밀(密)’자는 빽빽하다는 뜻도 있지만 깊숙하고 그윽하다는 뜻도 지닌다.

집안에서(宀) 산을(山) 품은 마음(心), 산을 다스리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풀 수 있겠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

그런데 마음에 확 와닿았다.


친밀하다는 것은 보고 싶어서 달려 나가고 기다리고 애태우는 마음이다.

친밀하다는 것은 산속에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바람 잘 날이 없지만 그 산을 그윽하게 품는 속 깊은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들의 집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들의 가족이다.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친밀한 표현을 하려고 한다.




영어로 친밀하다는 단어를 Close라고 한다.

문을 닫다, 바짝 붙다, 집중하다, 눈을 감다, 뚜껑을 덮는다는 뜻도 지닌다.

우리의 관계를 위협하는 외부 요소들을 차단하기 위해서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아무도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게 바짝 붙어버리는 것이다.

다른 것은 안 보고 오직 너에게만 집중하겠다며 눈을 감는 것이다.

너의 아픔과 슬픔, 잘못과 실수를 포근하게 덮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우리말이든 한자든 영어든 친밀한 관계란 독단과 독선으로 똘똘 뭉친 외골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런 똥고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올 수 있었다.

보고 싶다는 말, 세상에 너밖에 없다는 말, 너는 내 거야라는 말, 너만 생각한다는 말, 네가 최고라는 말, 너를 사랑한다는 말.


"그런 친밀한 말에 속아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 말들이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친밀한 말에 빠져서 여태껏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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