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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18. 2021

추석 연휴에 추천하는 책들, 이번엔 시집이다!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지는 시간,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시간.

어쩌면 명절은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온다.

누군가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여유로운 시간이며 누군가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피곤한 시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나갔다 오면 녹초가 되어버리고 여기 정도면 한산하겠다 싶은데 가보면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명절은 우리에게 그런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명절이 좋은 건 어쨌거나 시간이 생긴다는 거다.

일상의 업무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해볼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출근 걱정이 없어서 아침에 부지런을 떨지 않으니 모처럼 밤늦게까지 딴짓을 할 수도 있다.

그 시간에 평상시에 벼르던 책 읽기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시간은 연휴로 여유 있게 주어졌지만 신경은 연발로 날카로울 수 있다.

그래서 기왕이면 무게감 있는 책보다 가벼운 책을 보는 게 좋겠다.




명절은 옛 일을 기억하는 시간이다.

그런 분위기에 안성맞춤은 예전에 흥얼거렸던 시들을 읊어보는 거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서정시의 대표자들을 소개한다.

김소월, 백석, 윤동주이시다.

나는 이 분들을 ‘오산학교 트리오’라고 부른다.

오산학교는 남강 이승훈 선생과 고당 조만식 선생이 일제 강점기에 평안북도 정주 땅에 민족 교육의 기치를 걸고 세운 학교이다.


오산학교는 또한 김소월, 백석, 윤동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근현대 시인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소월은 어렸을 때 일본인에게 폭행을 당해 목숨을 잃은 아버지를 보았고, 윤동주는 일제의 감옥에 갇혀 스물여덟 청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백석은 우리말과 글을 빼앗겼던 시절에도 순전히 우리말로만 시를 썼던 인물이다.

암울한 하늘 아래였지만 이 세 분의 시들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 빛을 보며 우리는 노래를 불렀었다.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반가운 시들이 인사를 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는 외우기도 참 많이 외웠고, 시에다가 곡조를 붙여서 운동회 때 응원가로도 불렀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한 번’은 <그 집 앞> 노래와 어울려 세레나데처럼 다가온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를 읊다보면 어린시절로 훌쩍 시간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든다.




백석의 시집은 <사슴> 한 권밖에 없다.

1930년대 평안도 사투리를 모르면 해석하기도 어렵다. 

사실 <사슴> 이후에 쓴 시들이 더 많이 알려졌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에서는 연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묻어난다.

함경도 북관에서 병에 걸려 의원을 찾은 후에 쓴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의 시구에는 고향의 정취가 담뿍 담겨 있다.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의 집에서 쓴 편지에서는 삶은 가난하지만 그리움과 외로움만 부자인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시집일 것 같다.

특히 서시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을 안 외워본 청춘이 있을까?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에서는 나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에 이르면 저절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연휴라고 하지만 절대로 한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계획이 있어도 바쁘고 계획이 없어도 바쁜 게 연휴다.

그래도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책장을 넘겨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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