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Sep 23. 2021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세트(sete)라는 작은 해안도시의 바닷가에서 파도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해변의 묘지>라는 시를 썼다.

파도가 몰려와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면서 여기가 파도의 묘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분명 죽어 없어져야 하는 파도가 되살아나고 다시 밀려오고 다시 부딪히는 것이었다.

한 번 부서지면 끝나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데 파도는 끝나지 않았다.

죽지 않았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밀려오고 다시 몸을 던져 부서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발레리는 용기를 북돋워주기로 했다.

그래서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라고 적어놓았다.

바람이 불어서 파도가 치면 그게 파도의 마지막 운명이 될 텐데 발레리는 다시 살아나는 것을 노래하였다.

나는 발레리처럼, 살아야겠다고 노래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미국 흑인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친 흑인 여성 중에 마야 안젤루가 있다.

그녀는 1928년생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요, 뮤지컬 가수와 인권운동가로 치열하게 살았다.


3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7살 때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 사실을 안 동네사람들이 분노해서 새아빠를 죽여버렸다.

그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려 그녀는 몇 년 간 말을 못 했다.

겨우 회복되어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14살 때 또래의 남자아이에 의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미혼모로서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다.

30대 후반에는 함께 인권운동을 했던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이 희생되는 것을 보았다.

눈물로 뒤범벅이 된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새장 속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라는 책을 통해 절망 중 희망을 그려냈다.

나는 안젤루처럼 새장 속에 갇혀 있어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조선의 힘이 약해지던 1895년 10월 8일에 명성황후가 경복궁 건청궁 앞 옥호루 다리 위에서 시해되었다.

그때 일본 자객들의 출입을 온몸으로 막으려고 했던 시위대장 홍계훈과 군사들이 있었다.

자객들은 그들을 먼저 죽이고 명성황후와 궁녀들을 죽였다.

그리고 그 시신들 위에 기름을 붓고 불태워버렸다.

2년이 지난 후에야 명성황후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고종황제는 자기 부인 명성황후를 보호하다가 먼저 칼에 맞아 죽어간 신하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기억하기 위하여 남산 밑에 단을 하나 만들었다.

신하들의 충성심을 기념하기 위해 차린 단이란 뜻으로 그 이름을 ‘장충단’이라고 지었다.

다 쓰러져가는 나라의 미약한 왕비일 뿐인데 목숨을 던져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처럼 끝까지 신념과 충의를 지키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폴 발레리처럼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생명을 노래하는 사람이고 싶다.

“봐라! 바람이 불잖아.

바람이 부는 것은 “살아라!” 하는 하나님의 사인이야!”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마야 안젤루처럼 억압의 새장 속에 갇혀 있더라도 희망을 꿈꾸는 사람이고 싶다.

“울고 앉아있다고 해서 삶이 해결되지 않아.

어쨌든 살아야 해.

절망 같은 것은 안개와 같아.

걷다 보면 걷힐 거야.”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명성황후 앞에 먼저 간 신하들처럼 죽음의 칼날이 겨눠오더라도 내가 있어야 할 그곳을 지키는 사람이고 싶다.

“나의 사명은 황후를 지키는 것이오!

내가 죽더라도 지키는 것이오!

나를 베지 않고는 황후께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소!”

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어떤 이들이 보기에는 미련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아름다운 것이다.

어디 그런 사람 없을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석 연휴에 추천하는 책들, 이번엔 시집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