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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03. 2021

읽은 책을 다시 읽었다!


책 이름이 맘에 들어 냉큼 집어 들었는데 본 것 같기도 하고 안 본 것 같기도 하다.

몇 페이지를 읽다 보니 재미있다.

내가 아는 내용이 나오는 것 같아서 더욱 반갑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책의 내용이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너무 일치한다.

이상하다고 느낄 때쯤에 결정적인 사건이 전개되거나 그 책에서만 나오는 인물이 등장한다.

‘에잇! 전에 읽은 책이네.’

갑자기 허탈한 느낌이 든다.

계속 읽을까 말까 망설인다.


그동안 읽은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면서 내 머리가 굳었나 하는 염려가 살짝 스친다.

하긴 자기가 읽은 책을 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외국인이 쓴 책이라면 저자의 이름도 생소하기 때문에 다시 봐도 낯설기 마련이다.

그래서 종종 이런 일이 생기곤 한다.

단골 서점이 있으면 이럴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책을 전에 구입한 적이 있는지 내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읽은 것으로 족하다는 책들이 있다.

한 번 읽기에도 시간이 아까운 책도 있다.

디자인은 멋있게 만들었는데 내용은 별로인 책들도 있고, 유명인들의 추천을 받았는데 도대체 그 추천한 사람들이 책을 읽어봤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책들도 있다.

어떤 책은 중고서점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에 잡힌 책에서는 분명 얻을 것이 있다.


한 번 읽고 나서 곧바로 쓰레기 분리 배출장으로 보내질 책이라 하더라도 그 책에서 얻는 게 있다.

책 한 권에서 한 줄, 한 문장이라도 얻으면 책 값 본전을 뽑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까지 작가가 쏟아부었던 시간과 열정을 생각한다면 그깟 책 값 만 몇천 원이 가소롭게 보인다.

그래서 읽은 책을 다시 읽더라도 그리 시간 아깝다고 여기지 않는다.

내가 또 이런 일을 저지르고 있다며 속으로 웃고 만다.

그리고 다른 책을 집어 든다.




하지만 읽은 책을 다시 읽고 또 읽는 경우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천자문이나 사서삼경 같은 책을 수십 수백 번 읽어서 아예 외우다시피 했다.

유태인 랍비들은 성경을 달달 외우곤 했다.

경전은 그렇게 읽고 또 읽는 책이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읽을 때마다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경전 외에도 읽고 다시 읽는 책들이 있다.

학문하는 사람은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유명 학자들의 책을 여러 번 읽는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그 학문을 기반으로 하여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신앙심이나 학문 연구 같은 특별한 목적을 지니지 않았음에도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경우들이 있다.

대표적인 책들이 바로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 백 년이 넘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한 번 읽고서 끝내기가 너무 아깝다.

그래서 고전은 읽고 나서도 일단 책장에 꽂아둔다.




읽은 책을 다시 읽을 때 느끼는 기쁨이 있다.

우선 이 어려운 책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 자신이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전에는 못 본 것 같은데 이번에 읽을 때 눈에 들어오는 부분도 있다.

한 번 읽을 때는 좋은 글이라고 여겼는데 두 번 읽을 때는 그게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다시 읽을 때는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더 자세히 느낄 수 있다.


고전은 필기도구가 여의치 않은 시절에 쓰였다.

몇 글자 쉽게 쓰고 지우고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니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입으로 중얼거리고 중얼거린 다음에야 글로 옮긴 것이다.

그래서 명문장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니 쉽사리 평가할 수가 없다.

한 번 읽은 것으로 그 책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읽고 또 읽으면 읽은 만큼 얻는 게 많다.

그래서 가끔은 읽은 책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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