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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10. 2020

공부하자 공부하자


한문을 처음 배울 때 선생님께서 강조하며 가르쳐주셨던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다. 쪽에서 나온 빛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말이라고 “너희들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막상 스승보다 더 나은 제자, 아버지보다 더 나은 아들이  나오는 게 쉽지는 않다. 오히려 아버지는 대단한 분인데 아들은 형편없는 경우도 있고, 스승은 만인의 존경을 받는데 제자는 스승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수님과 가룟 유다의 경우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공자에게도 공리(孔鯉 혹은 백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명성에는 이르지 못했다. 공자가 가장 아꼈던 제자는 안회(顔回)였으며, 그 외에 자로(子路), 자공(子貢) 등 여러 제자들이 있었지만 아들의 이름은 잘 거론되지 않는다.     


공자도 아들을 바라보면서 ‘이 녀석이 공부를 좀 열심히 해야 하는데’ 하는 애틋한 감정이 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아들에게 “시경(詩經)의 주남과 소남의 시를 공부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아들이 아직 그 책을 공부하지 못했는지 대답이 없자, 공자가 잔소리하듯이 말했다. “사람이 그것을 읽지 않으면 마치 담장(牆)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아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그 유명한 ‘알아야 면장(免牆)을 한다’는 말이 나왔다. 알아야 담장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로부터 4천년 후에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인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했는데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베이컨은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는 방법인 <신기관(新機關)>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조선을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위해서 ‘면(面)’이라는 행정구역을 새롭게 만들었고 면의 최고 관리인 면장(面長)을 세웠는데 당연히 일제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그 자리를 주었다. 면은 사실 백성들과 가장 가까운 행정조직이었다. 그래서 면사무소에는 중앙에서 행정요원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그 지방에서 적당한 사람을 뽑아 자리에 앉히곤 했다. 면서기가 특히 그렇다. 그러다보니 온갖 청탁이 이어졌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윗사람을 알아야, 혹은 윗사람이 알아줘야 면장 직을 얻을 수 있다”는 말로 와전되기도 하였다. 또 “공부를 잘 해서 뭘 좀 알아야 면의 대표인 면장(面長)을 할 수 있다”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언어가 시대와 상황에 맞게 변형된 대표적인 예이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윗사람을 안다고, 윗사람이 손 써 준다고, 아니면 뭘 좀 안다고 해서 면장(面長)을 할 수는 없다. 일단은 공무원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은 공부할 게 너무 많다. 깨달아 아는 속도보다 새로운 지식이 쏟아져 나오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래서 잠시만이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내 앞에 담장이 드리워진 것처럼 답답함을 느낀다. 어딘가 분명 문이 있을 텐데 수수께끼처럼 숨겨져 있다. 그 비밀의 통로를 찾아야 하고 탈출방법을 알아야 한다.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는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라는 책을 썼다. 인생을 살다보면 계속 문제가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평생공부의 장이다. 책으로 하든 경험으로 하든 아니면 사람을 만남으로 하든 평생 공부해야 한다.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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