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자국 차이

by 박은석


“여기는 고요의 기지. 이글호가 착륙했다!”

그 소리가 울리는 순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던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큰 환호성을 질렀다.

1969년 7월 20일의 일이었다.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선인 이글호가 달에 착륙했다.

착륙선의 문을 열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껑충껑충 뛰면서 달 표면에 발자국을 찍었다.


후에 암스트롱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이들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 순간 지구의 모든 사람은 하나가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목소리에는 “우리가 승리했다.”라는 자부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아폴로계획은 당시 미국 국내총생산의 5%에 달하는 254억 달러의 금액이 소요된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암스트롱의 음성이 들릴 때까지는 성공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이어진 냉전체제는 미국과 소련의 군비 확장 전쟁으로 치달았다.

누가 더 멀리 미사일을 쏠 수 있느냐에 미국과 소련의 자존심이 걸렸다.

1957년에 소련이 인류 최초의 우주선인 스푸티니크 1호를 쏘아 올렸다.

연이어 스푸티니크 2호는 처음으로 생명체를 우주로 보냈다.

‘라이카’라는 개였다.

그리고 1961년에는 최초의 유인 우주선인 보스토크 1호를 발사했다.

그 우선의 비행사는 유리 가가린이었다.


자유 진영의 대표였던 미국이 뭘 좀 하려고 하면 소련이 먼저 일을 터뜨렸다.

그래서 사람을 달에 보내는 것만큼은 소련보다 빨리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만 앞설 뿐, 아폴로 11호를 보내기까지 숱한 실패가 이어졌다.

더군다나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후유증과 흑인 인권운동으로 인한 사회적인 갈등이 거세게 몰아치던 시기였다.

그런 갈등들을 한방에 해결한 것이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었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오른 탐험대들은 자기 나라의 국기를 꽂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마찬가지로 아폴로 11호의 우주인들에게도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달에 꽂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큰 임무였다.

달착륙선의 이름조차도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 이글(Eagle)호였다.

그만큼 당시 미국이 달 착륙에 엄청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달의 바짝 접근한 아폴로 11호에서 이글호가 떠날 때까지만 해도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글호가 달에 착륙하기 전에 갑자기 오류가 발생했다.

지구 상황실 모니터에는 ‘1202’라는 오류번호가 떴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23초 후에 오류는 해결되었고 달 착륙 허락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찍은 것이다.

그 발자국 하나가 복잡한 모든 문제들을 한순간에 잠재워버렸다.




암스트롱은 그 순간에 가장 적절한 말을 했다.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입니다.”


살다 보면 한 발자국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다.

루비콘 강가에서 내디딘 카이사르의 한 발자국에 로마의 역사가 달라졌다.

위화도에서 발을 돌린 이성계의 한 발자국에 고려는 사라지고 조선이 시작되었다.


언젠가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을 때가 있었다.

아파트 7층 베란다 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저히 희망이 없어서 그냥 여기서 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빌었다.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망성이 없기 때문에 빨리 결론을 내리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한 발자국만 내밀면 다 해결될 것 같았다.

한참을 그러다가 문을 닫고 들어왔다.

나의 삶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그때 깨달았다.

삶과 죽음은 한 발자국 차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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