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 와서 고향인 제주도를 생각한다

by 박은석


강원도에 왔다.

이 여섯 글자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이 흔들린다.

강원도의 어디라고 굳이 밝히지 않아도 ‘좋겠다’하는 부러움을 얻어낼 수 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응, 나 지금 강원도에 왔어.”라고 하면 금세 그 효과를 느낄 수가 있다.

듣는 사람은 강원도에 얽힌 자신의 추억들을 하나씩 들춰낸다.

친구랑 놀러갔던 일, 군 복무했던 힘들었던 일, 직장에서 연수갔던 일, 가족과 여름휴가 갔었던 일 등 다양한 기억들이 ‘강원도’라는 한 단어 속에 들어 있다.

그때는 여유로웠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던 때였다.

산바람도 맞고 바닷바람도 맞았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백사장을 걷기도 했고 전망 좋은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강원도가 뿜어내는 매력이다.

강원도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이다.

떠날 때면 '나중에 다시 와야지'하는 마음으로 간다.

하지만 다시 오기가 쉽지 않다.

거리가 먼 것도 아닌데 시간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제주도가 고향이다.

이 여덟 글자만으로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얻어낸다.

제주도의 어디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정말 좋겠다”라며 부러워한다.

자기들은 큰맘 먹고 오래전에 한 번 제주도 갔다 왔는데 나는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고 한다.

그때 제주도에 이러저러한 곳에 들렀었다고 한다.

제주도의 푸른 밤 노래를 부르면서 “떠나요 둘이서”의 환상 속에 빠져든다.

이번에 제주도에 갈 계획이 있는데 더 좋은 곳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제주도가 고향이니까 제주도는 빠삭하게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과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 힘들다.

나도 제주도를 떠난 지 오래된 사람이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했을 시간이다.

그동안 좋은 곳이 많이 많이 생겼다.

나도 가보지 못한 곳들이다.

언젠가 한번 가 봐야지 생각은 했는데 막상 가기가 쉽지 않다.

그리 멀지 않은데 기회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강원도에 잠깐 들른 사람과 강원도가 고향인 사람이 강원도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를 것이다.

제주도에 놀러간 사람과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의 제주도에 대한 인상도 너무 다를 것이다.

누구에게는 여유 있게 쉬고 가는 곳이지만 누구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살아가는 곳이다.

제주도 사람이라고 일 년 열두 달 한라산을 올라가지 않는다.

평생 한 번 올라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한가하게 관광지나 돌아다니면서 지낼 수가 없다.

일해야 하고 생활하며 살아가야 한다.

참 신기한 게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동네 선배들이랑 놀러다녔던 곳들이 어느 순간 관광지가 되었다.

팬티만 입고 뛰어들어 물장난쳤던 곳이 이제는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물장구도 칠 수 없고 파도치는 모습만 보고 와야 한다.

그곳에 가면 어릴 적 뛰놀던 고향이 있을 것 같지만 막상 가서 보면 내 고향은 간데없다.




강원도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는 떠나갈 것이다.

떠날 때는 짐을 줄이는 게 좋으니까 어지간한 것은 여기서 버리고 갈 것이다.

먹거리가 조금 남았는데 당연히 버린다.

만약 내가 여기 사는 사람이라면 버렸을까?

당연히 안 버린다.

두고두고 써야 한다.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에 숙소에 지불한 비용이 아까워서 최대한 밍기적거리고 있다.

천천히 동네 한 바퀴를 둘러보고 왔다.

그런데 내가 여기 사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고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아까울 것이다.

매일 보는 풍경인데 뭘 이런 걸 본다고 시간을 낭비하고 돈을 쓸까 의아해할 것이다.

할 일도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신세 좋은 한량이라고 여길 것이다.

놀러 온 사람과 사는 사람은 이렇게 다르다.

그 차이를 알기에 나에게 제주도가 고향이어서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짓궂은 대답을 한다.

“가서 한번 살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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