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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함의 묘미
by
박은석
Oct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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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컸다.
바른 자세로 앉고, 바른말을 하고, 바르게 글을 쓰고, 바른손으로 숟가락을 잡으라고 했다.
학교 급훈이 바른생활이었고 교과서 이름에도 바른생활이 적혀 있었다.
동사무소와 현관 위에는 ‘정의사회구현’이라는 현판에 새겨져 있었다.
그 여섯 글자는 마치 순경의 눈처럼 드나드는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바른 세상을 만들자는 구호가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었다.
그 말은 마치 이전에는 우리가 잘못 살았던 것처럼 들렸다.
지금까지는 봐줬는데 이제는 안 봐주겠다는 말 같았다.
아이들에게 바른생활의 모범은 어른들이, 선생님들, 지도자들이었다.
그분들을 바른 가르침을 따라 아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고쳐나가려고 했고 훌륭한 어른이 되는 것을 꿈꾸었다.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되면 새 나라이 역군이 되고 일꾼이 되어서 바른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생각했다.
바른 모습은 집과 마을, 산천의 모습까지 와장창 바꾸어갔다.
각 지역의 환경에 맞춰서 그 지역만의 독특한 모습으로 지어진 집들은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반듯한 것을 좋아하는 바른 사람들은 그 모습들이 무질서하고 어수선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초가지붕, 억새지붕, 너와지붕, 굴피지붕과 기와지붕들은 하나씩 헐리고 그곳에 깔끔하게 함석지붕, 슬레이트지붕, 콘크리트지붕이 자리를 차지했다.
지붕에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으로 페인트를 칠하니 그림책에서나 보아왔던 반듯한 모양새가 갖춰졌다.
박수를 치면서 보기 좋다고 했다.
꼬부랑할머니가 걸어 다녔던 꼬부랑 고갯길들이 사라지고 넓고 곧은 신작로가 들어섰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마을들을 갈아엎어서 네모반듯한 아파트를 만들었다.
조회시간에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도 반듯하게 줄을 맞추게 했다.
모든 것들을 똑바르게 만들어놓으니 세상이 시원하게만 보였다.
그런데 아무리 반듯하게 바르게 살아가려고 해도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듯한 것만 보면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래서 일부러 조금 삐딱하게 살아볼까 생각했다.
일단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조금 삐딱하게 돌려보았다.
이상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집이 확 달라 보이면서 뭔가 심오한 느낌이 감도는 것 같았다.
가지런하게 놓여 있던 물건들을 헝클어뜨렸더니 오히려 생동감 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얼굴과 손에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모습이 재밌어 보이기도 하였다.
골목이 구불구불해야 술래잡기도 재미있다.
표준말을 쓰는 사람보다 구수한 사투리로 말하는 사람에게서 더 깊은 인간미를 느끼게 된다.
고속도로의 똑바른 길보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옛길이 더 운치가 있어서 일부러 그 길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언제부터인가 꼬불꼬불한 올레길과 굽이굽이 둘레길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바르게 살아야만 잘 사는 줄 알았다.
삐딱하면 잘못되고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낡은 졸업사진 속의 여자아이들은 다소곳하게 다리를 모으고 무릎 위에 양손을 올린 모습으로 앉아 있다.
모두가 똑같은 모습이어서 누가 누구인지 한참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좀 삐딱하게 찍었으면 어땠을까?
누구는 얄개처럼 짝다리도 짚고, 누구는 도도한 사람인 양 다리를 꼬고 앉기도 하고, 손으로 엄지척을 한다든가 V자를 했다면 훨씬 재밌고 오래도록 기억나는 사진이 되었을 것이다.
반듯하고 바른 것보다 오히려 삐딱한 게 매력적이기도 하다.
바른 자세로 사물을 보면 앞면 하나만 보이지만 삐딱하게 고개를 돌리면 윗면도 볼 수 있고 왼쪽과 오른쪽도 볼 수 있다.
삐딱하게 생각하다 보면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지식과 놀라운 지혜를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지구도 23.5도나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다.
지구가 삐딱하기 때문에 우리가 반듯하지 못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삐딱해도 좋고 삐딱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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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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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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