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도 잘못도 내 인생의 일부이다

by 박은석


운동경기를 보면 가끔씩 심판의 판정이 애매하게 내려질 때가 있다.

아웃인데 세이프라고 하기도 하고 골인데 노 골로 선언되기도 한다.

심판도 사람이다 보니 순간적으로 실수를 할 수 있다.

분명히 두 눈 똑바로 뜨고 보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상황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억울한 판정을 당한 선수들은 괴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감독까지 나선다.

말로 항의하다가 통하지 않는 경우에는 배를 들이밀어 심판을 밀어붙이기도 한다.

일명 ‘배치기’이다.

그렇지만 자칫 격렬하게 항의하다가 경고를 받거나 퇴장을 당하는 등 더 안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

그만큼 한 번 내려진 심판의 판정은 번복되기가 쉽지 않다.

선수도 코치진도 그 사정을 잘 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한 번 표출한 후에는 얼굴빛 싹 닦고 다시 경기에 임한다.

잘못된 판정도 경기의 일부라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정확한 판단을 위하여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도입하는 경기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판이 오심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오심을 만회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든 것이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비디오 판독이 들어가면 우리의 가슴은 다시 한 번 두근거린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원심이 그대로 유지된다.

당연할 것이다.

심판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사람들이고 정확하게 판정하려고 갖은 애를 쓰기 때문에 실수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심판의 판정에 오류가 있었음을 비디오 판독이 잡아내는 경우도 많다.

텔레비전은 그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계속 보여준다.

느린 화면으로 보면 미세한 차이가 보인다.

사람의 눈으로는 파악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역시 비디오 판독은 매섭다.

그래서 테니스에서는 비디오 판독을 ‘매의 눈(호크아이, Hawkeye)’이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야구심판을 컴퓨터가 하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들도 나온다.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사람보다 컴퓨터가 더 정확히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

18미터 앞에서 시속 150킬로미터로 날아오는 공을 보고 판정을 내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컴퓨터가 심판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만약 컴퓨터가 심판을 본다면 나중에는 선수들도 로봇으로 바꾸자고 하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비록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실수를 범할 수도 있지만 그 결정들도 경기의 일부라고 받아들여야 경기를 즐길 수 있다.

흑이면 흑이고 백이면 백이라는 식으로 정확하게 구분해야 나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나을 때도 있고 회색지대가 좋을 수도 있다.

우리의 삶도 이쪽이냐 저쪽이냐 편 가르지 않고 이쪽저쪽에 조금씩 걸쳐 있기에 더욱 재미있는지도 모른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는 껑충 뛰어오르면서 날아오는 공을 건드려서 골을 넣었다.

심판은 당연히 머리에 공이 닿은 줄 알고 골을 선언했다.

하지만 느린 화면으로 보면 마라도나의 왼손에 공이 닿은 후 골망을 흔들었다.

상대편인 잉글랜드에서는 거세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분명한 오심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오심 덕분에 월드컵 축구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그리고 월드컵 때만 되면 반드시 등장하는 재미있는 뉴스거리가 되었다.

흔히 잘못된 판단은 무조건 바로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정확하기를 원하는 우리 자신도 실상은 오류투성이다.

언제 하루라도 실수하지 않고 넘어간 날이 있었나?

실수하고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이야깃거리가 많은 것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이듯이 실수도 잘못도 내 인생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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