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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26. 2021

나의 모든 환경은 나의 인생학교 교실이다


“꿀벌은 꽃을 가리지 않는다!” 조선 정조대왕 시절의 문장가였던 이덕무의 말이다.

그는 조선과 중국의 역대 한시는 물론 일본 시까지 두루 섭렵한 인물이며 가장 조선다운 시를 쓴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어느 날 누군가 그를 찾아와서 “역대의 여러 시 중에서 어떤 시가 가장 좋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이덕무는 “꿀벌은 꿀을 만들 때 꽃을 가리지 않는 법입니다.

만약 꿀벌이 꽃을 가린다면 꿀을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시를 짓는 것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시는 시인이 살고 있는 나라에 따라 다르며 시인이 살아가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똑같은 지역일지라도 사시사철 계절에 따라 다르고 시를 쓰는 사람과 시를 읊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다르다.

그러니까 좋은 시를 쓰려면 그 고장의 유래와 시대적 상황을 담아내고 당시의 언어와 표현방식을 동원하여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덕무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님을 형님이라 부르지 못했던 서자였다.

서자들은 과거시험에도 제한이 있었고 관직에 오르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자들은 인생을 한탄하며 기분 내키는 대로 살았다.

하지만 이덕무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입신양명을 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공부 자체에 목적을 두었다.

그는 주변 환경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사물의 존재 이유를 따지고 내적인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바를 삶 속에서 실천하려고 애썼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만큼은 당대 최고의 부자였다.

자신의 호를 ‘책에 미친 바보’라는 뜻의 ‘간서치(看書痴)’로 지을 정도였다.

인물은 인물이 알아본다고 정조대왕께서 그를 알아보시고 규장각의 일을 맡기셨다.

그는 박제가, 유득공, 박지원 등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고 그의 시문이나 문장은 중국 문인들까지 극찬할 정도였다.




이덕무의 시와 문장을 읽으면 뭐 이런 매의 눈을 가진 사람이 다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그는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다.

길가에 자라는 풀 한 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 풀의 이름은 무엇이며 언제 자라고 꽃을 피우고 씨를 퍼뜨리는지, 먹을 수 있는 것인지, 독이 있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관찰하였다.

곤충이나 짐승들도 일단 한번 그의 눈에 찍히면 온 몸이 해부되다시피 관찰당했다.

그게 매미든, 벼룩이든, 박쥐든 남아나지 않았다.

그렇게 얻은 정보들을 그는 가장 조선스러운 단어를 사용하여 가장 조선스러운 방식으로 꼼꼼하게 기록하였다.

당대의 지식인들 중에서는 그를 업신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하찮은 서자 출신에다가 전통을 따르지 않고 독특한 형식으로 글을 쓰니까 아니꼬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덕무는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한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으로 보여주었다.




꿀벌은 꽃을 가리지 않는다.

아카시아 꽃이든 밤꽃이든 여러 종류의 꽃이든 꿀벌은 어떤 꽃이든 꽃이 피면 그 꽃으로 달려들어 꿀을 딴다.

단지 꽃이 피는 시기가 제각각이어서 벌꿀의 이름이 꽃에 맞춰 지어지는 것뿐이다.

꿀벌은 편식을 하지 않는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해서 배움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우리는 이 꿀벌에게서 교훈을 받을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서나 무엇에게서나 배워야 한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인생의 한 줄을 배울 수 있고 접하는 모든 일에서 삶의 한 자리를 배울 수 있다.

손에 든 책을 통해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배울 수 있고, 예술을 통해서 삶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다.

꼭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만 잘 배우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면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 모든 환경이 나의 인생학교 교실이다.

그 안에서 나는 매일매일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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