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by 박은석


스무 살 청춘의 때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나에게도 고민이 참 많았다.

가장 큰 고민은 내가 왜 여기에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왜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왔을까, 왜 이 대학교에 왔을까, 왜 이 학과에 지원했을까?’

그 고민이 꼬리를 물어서 ‘나는 무엇이 될까? 무슨 일을 할까?’로 이어졌다.

너무 성급하게 대학 학과를 정해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다.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할 걸, 조금만 더 정보를 알아볼 걸 하는 아쉬움도 참 많았다.

번지수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원래 내가 가야 할 길은 이 길이 아닌데 갈림길에서 어영부영하다가 엉뚱한 길로 성큼 들어와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갔는데 가면 갈수록 왠지 이상한 길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 길로 오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아니 돌아가는 길을 잊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내 앞에 있는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저쪽 길을 택했다면 만족스러워하고 있을 텐데 이쪽 길은 가도 가도 캄캄하고 희망이 없어 보였다.




내가 다닌 학교와 학과가 내 처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

누가 들어도 우스웠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왜 하필 그 학교의 그 학과냐고 물어보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방패막이 비슷하게 외국어 좀 한답시고 아주 잠깐 중국어를 공부했다.

그때 중국의 문호 루쉰을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 [아Q정전(阿Q正傳)]도 떠듬떠듬 읽었다.

책의 분위기가 꼭 내 마음처럼 혼란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세상에도 희망이 있을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루쉰이 그랬다.

“희망이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희망은 마치 길과 같습니다.

길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걸어갔고 그 뒤에 또 한 사람이 걷고 그렇게 사람이 걷다보니 길이 된 것입니다.

희망도 그런 것입니다.”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 나의 인생길은 누가 닦아놓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었다.

미리 만들어진 길을 걸어가는 가는 것이 아니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가면서 나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있었던 길을 가는 게 아니라 길이 없는 곳으로 가야하는 것이었다.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아니었다.

희망도 저 멀찍이 눈에 보이는 것을 잡아와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서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한치 앞도 몰랐기에 수없이 실수했고 수없이 넘어졌다.

여러 번 실수하다 보니 조금씩 요령이 생겼고 여러 번 넘어지다 보니 넘어진 자리에 잠깐 드러누워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구름이 크게 뭉쳤다가 작게 흩어지면서 하늘에 다양한 그림을 그리듯이 나도 인생의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번갈아 그리고 있었다.




그 스무 살 때 그 길로 들어섰기에 오늘 이 길까지 오게 되었다.

만약 그때 다른 길로 들어섰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다른 길로 들어섰다고 해도 이 길과 큰 차이는 없었을 것 같다.

그 길에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나름대로 지금까지 잘 걸어왔다.

나만의 인생길도 하나 만들었고 인생의 지도에도 굵게 선을 그어 놓았다.


박노해 시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의 시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를 보았는데 딱 내 마음을 그려놓고 노래하는 것 같았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때로

잘못 들어선 어둠의 길에서

끝내

자신의 빛나는 길 하나

컴컴한 어둠만큼 밝아오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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