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 허물어지는 시간

by 박은석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 갇혔을 때 남긴 문장으로 유명하다.

물론 안중근 의사가 지어낸 말은 아니고 중국 고전에 나온 말을 인용해서 쓴 것이다.

어쨌거나 그 말에 도전하려고 했다.

하루에 조금이라도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게 습관이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때로는 나 자신에게 숙제를 내듯이 다그쳤고, 때로는 목표량을 정해서 몰입하기도 했다.

가속도가 붙어서 하루에 책 한 권 독파할 정도까지 이르렀다.

예전에는 1시간에 읽어내는 분량이 책 30페이지를 조금 넘길 정도였는데 이제는 1시간에 100페이지 정도는 읽게 되었다.

유독 책 읽는 속도가 느린 나로서는 엄청난 변화이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서면 책 좀 읽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도 꾸준히 독서량을 늘려왔다.

예년처럼 여름휴가 때 독서 곡선이 추락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10월까지 평균적으로 한 달에 스물댓 권은 읽었다.

그런데 11월의 복병을 만났다.

분명 시간은 똑같이 한 달인데 심상치 않다.

벌써 1주일 가까이 손에서 책을 놨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 나흘, 닷새, 엿새가 되었다.

‘어, 어’ 하는 사이에 시간이 지났다.

업무가 많았다는 것이 원인이다.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시간이 없었다.

핑계이다.

언제 바쁘지 않은 날이 있었나?

하릴없이 노는 날도 노느라고 바쁘다.

이제 책 읽을 시간이라고 정해서 읽었던 것도 아니다.

틈틈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면서 읽으려면 분명히 시간이 있었다.

하루 이틀 정도면 만회할 수 있었는데 날 수가 쌓이다보니 이번에는 만회하기가 쉽지 않겠다.

독서량을 채우지 못한 것보다 며칠 사이에 책 읽는 습관이 허물어져버린 게 마음에 걸린다.

습관을 들이기는 힘들지만 허물기는 순식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의 모든 일에 있어서 일정한 패턴을 그린다.

습관이다.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파브로의 조건반사 이론처럼 척하면 자동적으로 척 갖다 댄다.

아주 익숙하다.

그렇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식탁에 음식이 올라올 때 밥그릇은 왼쪽에 국그릇은 오른쪽에 놓는다.

이게 반대로 되면 밥이 안 먹힌다.

가끔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릇을 아무렇게나 놓고 가는 경우가 있다.

밥그릇이 오른쪽에 놓였다고 한들 먹지 못할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꼭 밥그릇은 왼쪽에 놓으려고 한다.

그래야 밥이 제대로 먹힌다.

습관 때문이다.

이 정도의 습관을 들이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 모른다.

보통 하나의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21일 동안 반복훈련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노력을 들여서 습관을 만든다.

그러나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어느덧 완전한 군인이 되었었다.

생활의 모든 면에서 각이 쫙 잡혔다.

그때는 군 복무를 마치더라도 계속 규칙적인 생활을 할 줄 알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정리정돈 잘하고 운동 열심히 하면서 반듯하게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제대하고 하루를 그야말로 편안하게 지냈다.

실컷 잠자고 몸이 늘어지도록 그냥 두었다.

그다음 날이 지나고 나니 내가 군대 갔다 왔나 헷갈릴 정도였다.

풀어진 라면처럼 흐물흐물해져 버렸다.

잡혔던 각도 흐릿해졌다.

2년 넘게 훈련받았기에 바짝 습관이 된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습관이 풀어지는 데는 순식간이었다.

마음 놓는 순간 습관은 끝이 났다.

의지가 약해서일까?

어디 가서 군대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고 그렇게 습관이 든 것 같았는데 또 군대 얘기를 해버렸다.

습관이 허물어졌다.

내가 이런 사람이니까 책 읽기 습관이 허물어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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