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이 주신 축복이다

by 박은석

자동차를 타고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 보면 누렇게 익은 벼이삭을 수확하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지금은 추수의 계절이다.

햇과일과 햇곡식은 추석 명절 즈음에 거두어들이지만 본격적인 가을걷이가 이루어지는 때는 10월 말이다.

한 단 두 단 쌓여 있는 볏단 사이로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탈탈탈 울려 퍼진다.

부지런한 집에서는 마당에 빨간 고추를 널어서 말리고 있다.

긴 장대 들고 가지 끝에 달려 있는 홍시를 따는 이 가을은 분명 축복의 계절이다.


그런데 가을이 왔다고 해서 누구나 다 기쁘게 추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어느 정도 예측하면서 농사를 짓지만 예전에는 그야말로 하늘만 바라보면서 농사를 지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농사꾼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봄여름에 열심히 일하고 가을에 추수를 할 수 있다면 크나 큰 축복이었다.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농작물이 다 잘 영그는 것도 아니다.

농작물이 영글기 위해서는 적당한 양의 햇빛과 바람과 비가 필요하다.

이건 농사꾼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햇빛이 비쳐야 할 때 해해님이 비쳐주셔야 한다.

비가 와야 할 때 비님이 오셔야 한다.

저수지를 넓고 깊게 파서 어느 정도 물을 저장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비가 오지 않아 가문 해에는 그 가뭄이 마치 귀신과 같다고 했다.


박화성 선생은 가뭄이 너무 심했던 시절을 그리면서 <한귀(旱鬼)>라는 제목을 붙였다.

유학을 숭상했던 조선왕조에서도 가뭄에는 배겨낼 도리가 없었기에 궁궐에서 기우제를 지내며 하늘에 빌기도 했다.

공자님도 맹자님도 가뭄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 가뭄의 계절에 한 줄기 비가 내린다면 그 비를 맞으려고 마당으로 내려가 두 팔 벌리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그렇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구름이 모여 바람과 비를 불러오고 구름이 물러가 햇살이 비친다.

그러면서 곡식이 노랗게 빨갛게 익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최근에는 하늘에 비 씨앗을 뿌려서 인공 비를 내리게 한다고 하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엄두를 낼 수도 없다.

그러니 비 한 번 내리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강은교 시인은 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었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이 구절만으로도 하늘 아래 고개를 숙이게 된다.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비를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힘쓴다고 해서 추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늘이 도와주셔야 한다.

하늘이 때에 맞춰서 문을 열어주고 닫아주어야만 농사할 수 있다.

농사는 하늘이 주시는 선물이다.

그래서 추수 후에 감사의 계절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농사에만 추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추수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날에 대한 인생의 열매를 맺는다.

공부도 운동도 일도 사업도 사랑도 연애도 모두 다 우리 인생의 열매들이다.

어떤 사람은 그 열매가 자그마하고 어떤 사람은 그 열매가 커다랗다.

그 크기가 꼭 노력의 결과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물론 열매를 위해서 얼마나 많이 투자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투자와 열매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열매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열심히 할수록 오히려 손해 보는 사람도 있다.

한 해 수고한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가만히 앉아 있다가 횡재하는 경우도 있다.

정말이지 하늘이 도와주셔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두어들일 인생의 열매가 없다.

나에게 무엇인가 추수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이 나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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