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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남자는 말야
나를 즐겁게 하는 방문객
by
박은석
Nov 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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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친구가 찾아온다면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논어 학이(學而)편을 시작하면서 나오는 문장이다.
군자에게 있는 3가지 즐거움 중의 하나가 바로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이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어디를 가더라도 두 발로 걸어서 가야만 했던 시대이니 먼 곳에서 친구가 온다면 며칠 걸렸을 것이다.
그만큼 그 친구는 나를 보고 싶어 했을 지경이니 맞이하는 내 입장에서도 굉장히 반가웠을 것이다.
친구라면 보통 같은 동네에서 자라거나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동문수학일 텐데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살게 되었을까?
특별한 무슨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친구 중의 하나는 멀리 떠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때 서로 헤어지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는 마음도 정말 애틋했을 것이다.
그렇게 떨어져 살다가 한번 만나기로 했다.
찾아간 친구나 맞이한 친구나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얼싸안고 즐거워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하고 듣는 것만으로도 족히 몇 시간을 흘렀을 것이다.
기껏 소식이라고 해봐야 편지 몇 통에 적은 글과 사람을 통해서 잘 지낸다는 말 몇 마디를 전한 것이 전부였다.
자세한 사정은 만나서 하기로 했다.
그 만남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을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도 생각해 보고 안 좋은 방향으로도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그 생각들을 모아놓으면 소설 몇 편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바로 오늘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었다.
건강한 모습만으로도 다행이고 고맙게 여겨졌을 것이다.
일단 만났으니까 이제는 가슴속에 간직했던 궁금증들을 다 털어놓으려 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처자와 형제자매들의 안부를 물으면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함께 웃고 함께 아파하며 눈물도 흘렸을 것이다.
친구가 온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친구를 만나면서 그런 반가움은 훨씬 줄어들었다.
아니 그런 풍경을 보는 것이 도리어 낯설어졌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영상으로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바로 옆에 있는 것과 별반 큰 차이를 못 느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를 만난다면 서로 중간 지점 되는 곳에서 만난다.
분위기 좋은 카페나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으로 찾아가서 밥 먹고 차 한 잔 마신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얼싸안고 방방 뛰지 않는다.
그저 “여기야”하고 손 한 번 흔든다.
여간해서는 집에서 만나는 일도 흔치 않다.
새집으로 이사하면 으레 친구들을 불러서 집들이를 했었다.
집들이 때 쓰려고 커다란 밥솥도 장만하고 밥그릇, 국그릇, 수저까지 여러 벌 마련했었다.
몇 번이나 썼을까?
두어 번 쓰고 나서는 더 이상 쓸 일이 없었다.
집으로 찾아오는 친구도 집에서 밥을 같이 먹는 친구도 없다.
그렇게 우리의 삶이 바뀌었다.
누군가 우리 집을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면 반가움보다는 당혹감이 인다.
‘혹시 아래층에서 올라온 것은 아닐까?’라는 마음이 제일 앞선다.
‘경비아저씨일까?
통장 아줌마일까?’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린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신경이 쓰일 것 같다.
조금도 반갑지가 않을 것 같아서 조심스레 문을 조금만 연다.
아무도 없다.
사람은 온 데 간 데 없고 대신 발밑에 박스 하나가 나를 반겨 맞이한다.
택배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배이다! 언제 오나?
지금쯤 도착할까?
그렇게 기다리는 것도 택배이고 가장 반가운 문자 메시지 중의 하나도 문 앞에 택배 상품을 두고 갔다는 메시지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내가 매우 정이 없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사람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변했을까?
다시 한 번 문자메시지를 본다.
문 앞에 택배를 두고 간다는 메시지이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지만 나를 찾아온 즐거운 방문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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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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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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