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밑바닥 인생이라 여겼던 때

by 박은석


스물다섯 살에 논산훈련소에 입소해서 군복무를 시작했다.

친구들처럼 스물한두 살에 군복무를 했어야 했는데 많이 늦었다.

이십대 초반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고 한 살 밑의 동생이 먼저 해병대에 입대하였기에 나름대로 집안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또 다양한 고민들 때문에 군입대가 늦어졌다.

당시에는 6개월만 군복무하는 6개월 방위병이 있었다.

대학 1년 휴학하고 복학하는 동안에 친구 중의 한 명이 6개월 방위의 그 찬란한 군복무를 마치고 나와 함께 복학하는 일도 있었다.

어차피 늦게 군복무하게 되었으니까 아예 장교로 가자고 생각을 했다.

학군단이라고 하는 ROTC는 대학 2학년 때 이미 포기했었다.

그래도 하나 남아 있었던 게 있다.

대학 4학년 마칠 즈음에 지원하는 학사장교였다.

학사장교로 복무하는 동안 공부도 좀 하고 장교 경험을 살려서 전역한 후에는 또 새로운 일을 도전해보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이 좋아서 대학 4학년 9월이 되면 국내 30대 기업이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입사설명회를 하였다.

그 자리에서 신입사원을 면접보고 채용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호시절이었으니 군복무를 오래 하려고 하는 친구들이 없었다.

자연히 장교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기에 어지간하면 다 합격하던 시절이었다.

학사장교 시험을 치르는데 옆에 둘러보니까 저쪽에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속으로 ‘저 놈은 시험을 잘 치러도 분명히 안 될 텐데...’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그 친구는 합격하였고 나는 장렬하게 떨어졌다.

그동안 내 인생에서 시험에 떨어진 적은 운전면허 시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장교시험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정원 미달되는 시험에서 말이다.

무엇인가에 책임을 전가해야 했다.

그래서 조상님들 때문에 신원조회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입영통지서는 나를 거르지 않고 잘 나왔다.

나를 맞아준 곳은 논산훈련소였다.

훈련병들 중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딱 한 명 있었다.

그 이도 사연이 기구했다.

훈련기간을 마치고 후반기교육을 열차를 탔는데 새벽에 얼핏 보니까 용산역이었다.

굉장히 반가웠다.

서울 근처에서 근무하게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열차는 계속 올라가고 올라가서 춘천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군용트럭을 타고 또 한 시간 가량 간 것 같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야수교였다.

그곳에서 8주 동안 운전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또다시 이동이었다.

나의 복무지인 3기갑여단이었다.

보통 운전병이라면 괜찮은 보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기갑부대에 간 운전병은 개밥의 도토리 신세다.

자동차와 탱크 중에 어떤 장비를 탈래 물으면 당연히 탱크라고 할 것이다.

그처럼 나는 전차병에 밀린 자동차 운전병이었다.

그것도 정비부대의 운전병이었다.




부대에 배치된 첫날 내무반에 각 잡고 앉아서 대기하고 있는데 고참이 텔레비전을 틀어주었다.

뉴스가 막 시작되었는데 세상에나! 그 뉴스의 아나운서가 내 대학 친구였다.

세상 참 불공평해 보였다.

누구는 화려한 카메라 조명을 받으며 전국 방송에 나오고 누구는 내무반에서 각 잡고 앉아 있으니 말이다.

군대 동기들은 나보다 4살이나 어렸다.

막내동생뻘이다.

중대장도 나보다 한 살 어렸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목소리 크게 “충성!”

살아오면서 그때만큼 자존심 상하고 실패자가 되어 밑바닥 인생을 산다고 느꼈던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먹었다.

‘내가 이렇게 밑바닥 인생을 살아볼 날이 앞으로 언제 다시 있겠나?’

정호승 시인은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라는 책에서

“그릇의 밑바닥이 제일 맛있다.”라는 말을 했다.

그때 밑바닥 맛을 실컷 맛보았기에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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