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분재를 죽인 사람

by 박은석


언젠가 친척으로부터 소나무 분재 하나를 선물 받았다.

비록 그 크기는 작았지만 가만히 보면 거대한 나무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실에 고이 모셔두고 화분에 물이 마른 것 같으면 물을 주면서 정성껏 가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나무가 점점 말라가는 것이었다.

누렇게 변해가는 솔잎들이 많아지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가까운 분재원을 찾아가서 소나무의 상태를 보여주었다.

분재원 사장님은 소나무를 보시더니 너무 안타까워하셨다.

이 정도의 분재라면 가격은 어느 정도 된다고 정보도 알려주셨다.

꽤 비싼 값이었다.

사장님은 나에게 분재를 구입한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으셨다.

나는 자랑스럽게 1년을 키웠다고 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1년을 키운 것이 아니라 1년 동안 죽여놨다고 하셨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냐고 나는 정성스럽게 돌보았다고 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내가 소나무를 정성스럽게 죽였다고 하셨다.




하! 하긴 사는 것과 죽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 아닌가?

살아가는 날이 많으면 죽을 날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언젠가 소나무도 죽을 날이 오는데 지난 1년 동안 내 손에서 살았다면 지난 1년 동안 내 손에서 죽음을 앞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려는 순간에 사장님이 나에게 소나무 분재를 돌보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소나무는 고집이 세서 사람으로 치면 상남자 같은 나무이기에 햇빛도 받아야 하지만 찬바람을 맞아야 한다고 하셨다.

아파트 거실에만 두면 안 된다고 하셨다.

물도 자주 주지 말고 가끔씩만 줘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 지난 1년 동안 내가 소나무를 죽여놓은 것이 맞았다.

바람이 불지 않는 아파트 거실에다 두었으니 소나무는 입장에서는 갇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틈만 나면 물을 주었으니 소나무로서는 엄청난 물고문을 당한 것이었다.

그러니 견뎌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사장님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고 여쭈었다.

사장님은 그래도 다행인 게 완전히 죽이지 않았고 조금은 살아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분재원에 두고 가면 자기가 살려놓겠다고 하셨다.

언제쯤 찾으러 오면 되냐고 물으니 1년 동안 죽여놓았으니까 살리는 데도 1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셨다.

명언이었다.

과학에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있듯이 생명에도 생명 불변의 법칙이 있다.

생성된 만큼 소멸되고 희생된 만큼 회복된다.

1년을 희생시켰으니 회복되는 데도 1년이 걸리는 게 맞을 듯싶었다.

다달이 소나무를 살리는 비용을 입금시켜주기로 하고 소나무를 분재원에 두고 왔다.

그 후로 몇 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정작 1년쯤 지나고 나서는 소나무 분재에 대한 생각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소나무 분재는 내 곁을 떠나갔다.

아니 내가 소나무 곁을 떠나갔다.




지금은 그 분재원이 어디였는지도 가물거린다.

소나무가 천 년을 산다고 하니 그때 만약 사장님이 살려놓았다면 지금도 독야청청하고 있을 것이다.

사장님은 찾아오지 않는 분재 주인을 뭐라고 생각하실까?

언젠가 오겠지 하면서 기다리실까?

아니면 진작에 내 분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셨을까?

오래도록 관리비도 안 냈으니 나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소나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1년 동안 자신을 학대하더니 이제는 버리고 갔다고 생각할까?

그러고 보니 갑자기 내가 아주 나쁜 놈이 된 것 같다.

사람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은 잘 하고 다닌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글은 잘 쓴다.

그런데 나무 한 그루도 살리지 못하면서 사람은 살릴 수 있을까?

글쎄다.

그래도 내가 사는 세상에 감사하다.

나처럼 망쳐놓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것을 살려놓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그 소나무가 어디에 있든 잘 살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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