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골탕 먹이는 세상의 법칙들

by 박은석


내가 어느 낯선 곳에 갔는데 꼭 전에 와봤던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과 신나게 얘기하는데 전에 얘기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번엔 꼭 안 될 것 같다는 감이 오면 정말 안 되기도 한다.

반면에 내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꼭 되는 경우도 있다.

마치 인생에도 무슨 법칙이 있어서 나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 같다.

내가 손을 대기만 하면 일이 틀어져버리는 경우가 있다.

내가 모임에 참여하면 모임이 깨지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팀이 공격상황에서 무사 만루의 상황을 맞았는데 꼭 내가 시청할 때마다 병살타와 뜬공으로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게 되면 아무리 좋은 찬스라고 해도 ‘안 될 거야’라는 마음의 속삭임을 듣게 된다.

그래서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 아예 채널을 돌려버리든가 화장실을 다녀오든가 한다.

그 열통 터지는 꼴을 겪고 싶지 않아서이다.




테니스 서비스를 할 때는 바닥에 공을 두 번 튕기는 습관이 생겼다.

어쩌다가 깜빡 잊고서 공을 두 번 튕기지 않으면 이번 서비스는 실패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테니스 스타인 조코비치가 서비스를 할 때 공을 여러 번 튕기는 모습을 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달은 자신이 마신 음료수병을 나란히 세워놓는 습관이 있는데 하도 진지하게 병을 세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웃기기도 하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선수는 코트를 옮길 때 절대로 선을 밟지 않으려고 한다.

선이 보이면 껑충 뛰어넘는다.

다른 종목의 선수들도 자기만의 습관이 있을 텐데 가장 도드라지게 보이는 이들은 야구선수들이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동안 타자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기 때문에 선수들의 특이한 동작들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특이한 폼을 지닌 선수들의 모습만 모아서 보는 것도 유쾌한 시간이 된다.




몇 달 전에 자동차 비상키를 잃어버렸다.

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 보이지 않았다.

옷장을 뒤지고 서랍을 뒤지고 가방을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분명 어느 옷 주머니에 있을 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달을 견디다가 얼마 전에 거금을 들이고 비상키를 하나 만들었다.

만들면서도 꼭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겨울옷을 꺼낼 때가 되고 얇은 옷을 집어넣다 보면 어디에선가 나올 것만 같았다.

이런 예감은 언제나 적중되는 것 같다.

찾지 못했던 것은 새 것을 사면 나타난다.

정말 그랬다.

지난주에 겨울 외투 주머니에서 뭔가 나왔다.

자동차 열쇠였다.

어떤 사람은 이사할 때 잃어버린 물건이 있어서 이사업체와 얼굴 붉힌 일도 있었는데 그다음 이사할 때 그 잃어버린 물건이 나왔다고도 한다.

그것 참 신기하다.

찾을 때는 안 보이고 잊어버렸다고 생각하면 그때 ‘짠’하고 나타난다.

나른 놀리는 세상의 법칙이 있나 보다.




그렇게 나를 놀리는 법칙 비슷한 것들이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시간이 빠듯할 때는 꼭 길이 막힌다.

급한 전화는 통화 중인데 잘못 누른 전화는 상대방이 꼭 받는다.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나면 중요한 오타가 보인다.

잠깐만 누웠다가 마저 일을 끝내려고 하면 꼭 깊게 잠이 들어 아침에 깬다.

내가 산 물건들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빨리 계산하려고 하면 바코드가 잘 찍히지 않는다.

여러 줄이 있었는데 내가 서 있는 줄은 옆줄보다 항상 늦다.

그래서 빨리 줄어드는 줄로 옮기면 이번에는 내가 원래 서 있었던 쪽 줄이 더 빨리 줄어든다.

결정적인 장면은 꼭 내가 한눈파는 사이에 일어난다.

가격이 오를 것 같아서 잽싸게 물건을 샀는데 그다음 날부터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한다.

이런 일들만 잘 피했어도 나는 벌써 성공한 사람 축에 끼었을 것이다.

나를 골탕 먹인 이런 법칙들 때문에 내가 이 모양 이 꼴인가 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