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밤나무를 생각하며

by 박은석


언젠가 미술시간에 데칼코마니(décalcomanie)라는 그림을 그렸다.

아니, 그렸다기보다 장난질을 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서 스케치북을 절반으로 나눠서 그 한쪽에 물감을 잔뜩 묻히고 나서는 반으로 접었다가 펴면 똑같은 모양이 만들어졌다.

거울을 마주보는 것처럼 좌우 대칭은 반대였지만 같은 그림이 두 장 생겼다.

그처럼 이 지구를 반으로 딱 접었다가 펴면 지구 저편에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80억 인구인데 그중에 한 명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확률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갖가지 생각들을 했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반쪽이를 찾는다는 글을 쓰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지금도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찾아 나서고 있다고도 한다.

우연히 SNS를 통해서 자신과 닮은꼴의 사람을 만난 사람들의 기막힌 사연들이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같은 엄마에게서 거의 동시에 태어난 일란성쌍둥이도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눈치 없는 사람은 구별하지 못하지만 세밀한 사람들은 알 수 있다.

그래서 똑같다는 말 대신 비슷하다고 한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동식물들도 비슷하게 생겼지만 종류가 다른 것들이 수두룩하다.

‘계문강목과속종’이라는 생물의 분류체계를 만들어서 어떻게든 비슷한 것끼리 함께 끼워놓으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에 주로 서식하는 너도 밤나무라는 나무가 있다.

가끔 외국 드라마를 보면 너도밤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말 탄 기사가 달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이 나무는 밤나무와 모양새나 열매가 비슷해서 이름이 그렇게 지어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울릉도에도 이 너도밤나무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울릉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 때 산신령이 내려와서 밤나무 100그루를 심으라고 했다고 한다.

만약 100그루를 채우지 못하면 무서운 벌을 내리겠다고 한다.

이런 괴팍한 산신령이 우리 전설 속에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하여간 사람들은 부지런히 밤나무를 심었는데 산신령이 다시 왔을 때는 나무 1그루가 죽어서 99그루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큰일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산신령이 나무들을 하나씩 세어가다가 100번째에 이르러서 한 나무에게 “너도 밤나무니?”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 그 나무는 엉겁결에 “네!”하고 대답했다가 한다.

밤나무가 100그루인 것을 확인한 산신령은 그 자리를 떠나갔고 그 나무는 ‘너도밤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에 신기하게도 울릉도에 심긴 99그루의 진짜 밤나무들은 하나씩 죽어나갔고 이 너도밤나무만 뿌리를 내려서 거대한 서식지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너도밤나무는 다 자라면 키가 20미터를 넘고 단풍도 아름답다.

열매는 꼭 알밤처럼 생겨서 삶아 먹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그러나 너도밤나무 열매는 먹을 수가 없다.

모르고 한 입 베어 문 사람들은 금세 인상을 쓰면서 다 뱉어낸다.

무늬만 밤이어서 그렇다.

우리 주변에 이런 너도밤나무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데 실제는 형편없는 사람들이 있다.

똑똑하고 모범생이고 여유도 많은 사람인데 온갖 추한 짓을 다 저지르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어디 가서는 괜찮은 인물로 대우를 받고 유명세를 과시하는데 가까이 지내다 보면 포악한 면을 여과 없이 비치는 인물들도 있다.

무늬는 깔끔하고 그럴싸한데 속은 썩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밤나무도 아니면서 “너도 밤나무니?”하고 물으니까 “네! 밤나무입니다.”라고 거짓 대답하는 이들이다.

차라리 “안 밤나무입니다.”라고 대답했으면 나았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