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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벅찬 오늘 하루
힘들었던 순간들이 즐거운 추억이 되기도 한다
by
박은석
Nov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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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6학년 때 4살 밑의 동생을 데리고 둘이서 공설운동장에 간 적이 있었다.
대단히 큰 체육대회가 며칠 동안 이어지던 날이어서 구경삼아 간 것이다.
지금의 부모들이라면 초등학생 오라비와 누이동생이 간다면 기겁을 할 일이겠지만 그 당시 내 부모님은 무슨 믿음이 있으셨는지 그냥 보내주셨다.
공설운동장에 가면서 여러 번 잔소리를 했다.
절대로 오빠를 놓치면 안 된다.
멀리 가지 마라.
반드시 옆에 있어라.
혹 오빠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고 어디로 가라.
그런데 그렇게 조심하고 조심했는데 어느 순간 그만 동생을 잃어버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옆에 있었는데 내가 한눈파는 사이에 동생이 없어졌다.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사방으로 뛰어다녔는데 보이지가 않았다.
‘큰일 났다, 끝장났다’하는 생각만 들었다.
이대로 집에 가면 부모님께 얻어맞을 것은 당연하고 동생은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
그렇게 한참을 지났는데 확성기에서 동생의 이름이 불려졌다.
지금 어디에 있는 보호소에 있으니까 보호자는 그리로 오라는 목소리였다.
단걸음에 달려가서 동생을 보고는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동생을 잃어버린 시간이 한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그 시간이 영원처럼 오랜 시간으로 여겨졌다.
그동안 나는 한없이 깊은 지옥을 내려갔다 온 듯한 기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날은 그렇게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 마음에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게 분명하다.
인도네시아에서 3년가량 지낼 때는 어디를 가나 식구들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낯선 땅이고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데 잃어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에 미연에 방지해야만 했다.
그렇게 조심하는데도 식구들을 순간 놓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내 가슴은 철렁거렸다.
그런 위기의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가만히 있었으면 괜찮았는데 괜히 나서서 일을 자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이런 어려움은 겪지 않았을 텐데 하는 괜한 신세한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부러운 대상이었다.
나처럼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이 부럽고, 나처럼 불안해하지 않는 것 같아서 부러웠다.
내가 겪는 고민과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들은 참 행복할 것 같았다.
행복이 뭐 별다른 것이 있겠나?
내가 겪는 일들을 안 겪으면 행복한 것이고, 나에게 없는 것을 갖고 있으면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투덜대고 불행해하고 불만족스러웠던 시간들도 하나씩 지나갔다.
큰일 날 것만 같았던 순간들도 여차저차 지나갔다.
신기한 것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때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들도 함께 지나갔다.
사라졌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니 그때는 가슴을 졸였던 일들이 지금은 별일도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즐거운 추억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살아가면서 내가 겪는 일들이 대부분 이렇게 변한다.
지금 두려워하는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여겨질 것이다.
잔뜩 긴장하고 겁먹었던 모습조차도 우스운 추억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움은 거대한 산처럼 우리 앞에 떡하니 서 있다.
정복하여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힘들기만 하다.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산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만 하고 내가 뒤처진 것만 같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언젠가는 정상에 오른다.
그때는 두려움도,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도 씻은 듯 없어진다.
힘들었던 모든 순간도 추억으로 남는다.
그처럼 오늘 나에게 힘든 일이 있다면 그것은 훗날 누군가에게 들려줄 즐거운 추억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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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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