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이 있으면 흠이 있는 대로 그것을 안고 가자

by 박은석


몇 년 전부터 가을이 깊어지면 피부가 옅어지는지 몸 여기저기에 뾰루지가 생긴다.

하루 이틀 지나서 없어지면 좋은데 이 녀석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피부가 건조해져서 그런가 나 자신을 돌아본다.

하긴 몸에 물사마귀들도 많아졌고, 없던 점들도 생겼다.

병원에서 점도 빼고 물사마귀도 제거해보았지만 조금 있으면 또 나타난다.

몸 여기저기에 흠집투성이다.


갓난아기의 피부를 보면 티 하나 없이 깨끗한데 나도 그럴 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백의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 여기저기 세월과 부딪히면서 상처가 나고 흠이 생겼다.

말끔해지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서 티 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 있는 흠을 메꾸기 위해서 저기를 도려내었다.

그러다 보니까 온 몸이 상처투성이 흠집투성이가 되었다.

차라리 흠이 생기면 생긴 대로 상처가 있으면 있는 대로 그냥 둘 걸 그랬다.




괜히 흠이 난 곳에, 상처 난 곳에 신경 쓰면서 지냈다.

그것 좀 없애보려고 너무나 많은 기운을 써버렸다.

세상에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세히 뜯어보면 누구나 상처 몇 개쯤은 가지고 살아가는데, 흠집투성이로 살아가는데, 나는 그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살아가는 것은 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깨끗한 눈길을 걸어가면 내가 걸음을 옮기는 만큼 눈길이 푹푹 꺼진다.

흠이 생긴 것이다.

상처가 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으로부터 깨끗한 몸을 받고 태어났지만 삶의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갈 때마다 내 몸과 마음에 흠이 생기고 상처가 생겼다.

그렇게 해서 나의 인생길이 만들어졌다.

흠의 깊이가 얕으면 곧 메워질 수 있다.

그러면 길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된다.

흠의 깊이가 깊어야 길도 선명해진다.

흠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선 굵은 인생을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흠이 없이 깨끗한 얼음판에는 쉽게 다가갈 수가 없다.

다가가면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그래서 얼음은 에둘러 피해서 간다.

사람도 흠이 없고 상처 하나 없는 사람에게는 정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가까이 하기가 너무 어렵다.

오히려 흠이 많고 상처 많은 사람에게 더 정감이 간다.

그런 사람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중독에 빠졌던 흠이 있다.

피카소는 한 여자에게 만족하지 못해서 결혼을 여러 번 했다.

툴루즈 로트렉은 뛰어난 화가였지만 술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매일 마셔댔다.

톨스토이는 자기 부인과의 사이가 좋지 못했다.

베토벤은 결혼도 못했다.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다.

사람들은 그들을 위대한 문학가요 예술인이라고 칭송했지만 그들도 자신의 흠집들 때문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나와 달랐던 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흠집을 메꾸려고 안달하기보다 그것을 고스란히 안고 갔다.




뉴턴이 주장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누구나 자신의 장점이 있는 반면에 약점도 있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은 것처럼 장점이 강하면 약점도 강하다.

자신이 잘하는 일에 쏟아붓는 에너지와 자신이 못하는 일에 쏟는 에너지를 합해서 나누면 평균값은 항상 50이 나올 것이다.

에너지는 어디 가지 않는다.


나의 약점을 만회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기 좋다.

모난 부분은 다듬어가면서 두루뭉술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모난 부분은 모난 대로 놔두는 것도 좋다.

아니 더욱 모나게 깎아내는 것도 좋다.

깎아지른 기암괴석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은 그것이 주는 멋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약점이 나의 발목을 잡아챈다고 하소연하지 말자.

세상에 약점 없는 사람은 없다.

흠이 있으면 흠이 있는 대로 상처가 났으면 상처가 난 대로 그것을 안고 가는 거다.

흠이 있어도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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