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기기에 대한 세대 간의 생각 차이

by 박은석


딸아이는 아이패드로 영상강의를 들으면서 애플펜슬로 그림도 그리고 필기도 한다.

고등학생에게 그런 게 필요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필요하다.

지금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과 친해질 수밖에 없다며 아예 스마트 기기를 가지고 노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성균관대학교 최재붕 교수는 <포노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지금의 아이들은 핸드폰과 일심동체인 인간이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니까 일찌감치 핸드폰을 가지고 실컷 놀게 만들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 있는 부모에게 그게 어디 쉬운 말인가?

당장 내 눈앞에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애들에게 천사처럼 ‘아유 이쁘네, 잘하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는 대한민국에 없을 것이다.

아마 최재붕 교수도 글은 그렇게 썼지만 막상 당신 자식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당장 낼모레가 시험인데 공부해야지 스마트폰이 무슨 말인가?




그런데 아이들 입장은 또 다르다.

스마트폰이 영어사전이 되고 백과사전이 되고 아이패드가 노트가 되고 스케치북이 된다.

그걸 가지고 후다닥 과제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신기하게 느껴진다.

중학생만 돼도 자기 부모들보다 훨씬 뛰어난 스마트 실력자들이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 아닌 타협이 이루어진다.

좋은 것은 아이들이 차지하고 오래된 것은 아빠가 차지한다.

오래된 아이패드는 내가 전자책 독서용으로 이용하고 새로운 아이패드는 딸아이 공부용으로 쓴다.

솔직히 딸아이 아이패드는 내가 다루기에는 겁이 난다.

기본적인 사용방법은 알겠는데 새로운 기능들이 낯설기 때문이다.

하나씩 배워야 하는데 이제는 뭔가 새로운 기계를 배우는 게 슬슬 귀찮다.

그냥 예전의 것들이 편하다.

단순하고 손에 익숙한 게 마음에 든다.

망가지더라도 쓸 만큼 썼으니까 아쉬운 마음 없이 떠나보낼 수 있다.




그렇게 딸은 딸대로 나는 나대로 잘 쓰고 있었는데 어제 딸아이가 애플펜슬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도움을 요청해왔다.

그놈이 제대로 작동해야 필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데 그놈이 말을 안 들으니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아이는 나를 맥가이버의 친구인 박가이버로 안다.

어지간한 것은 척척 고쳤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아무리 이 방법 저 방법을 동원해 봐도 요지부동이었다.

애플펜슬은 그 고고한 콧대를 삐쭉 세우며 절대로 나에게 자신의 고장 원인을 안 알려주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뜯어볼 수도 없는 놈이었다.

하는 수 없이 AS센터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말이다.

AS담당직원에게 제품의 이상 여부를 자세히 알려줬다.

담당직원은 꼼꼼하게 메모를 하고는 이 제품은 신품으로 교환해준다고 했다.

그게 애플의 정책이라고 했다.




예전의 전자제품들은 고장이 나면 뜯어보고 뭐가 망가졌는지 살피고 그 부품을 교체하는 식이었다.

지금도 많은 제품들을 그렇게 수리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하지 않는 제품들도 있다.

고장이 나면 아예 새로운 제품으로 바꿔주는 한이 있더라도 그 제품을 뜯어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 제품의 내부는 비밀이고 자신들만 알아야 한다는 판매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이 통하겠냐고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했는데 그런 방법이 잘 통했다.

공부할 때 스마트폰을 옆에 끼고 있으면 공부가 되냐고 했는데 공부가 잘 된다고 하는 우리 아이들의 대답을 듣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내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공부할 때 옆에 카세트오디오를 틀어놓았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 노래를 들으며 사연을 들으며 공부를 했다.

그때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을 것이다.

“저게 공부하는 건지 노는 건지...”

그러나 나는 그때 분명히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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