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함부로 밟지 마라!

by 박은석


가을비가 내리더니 길바닥에 낙엽이 수북하다.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정겹기도 하지만 이것도 며칠 지나면 깨끗하게 없어질 것이다.

우리 동네를 깨끗하게 해주시는 분들은 워낙 부지런하셔서 아침마다 떨어진 낙엽을 싸락싸락 쓸어내신다.

길이 지저분한 꼴을 견디지 못하신다.

이번 가을에는 가까운 데라도 단풍구경 한 번 가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멀리 못 가더라도 집 근처 탄천만 걸어도 괜찮겠다고 생각은 했다.

아니 생각만 했다.

공교롭게도 단풍이 화사한 색을 드리울 때가 되자 자투리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해야 할 일들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따라왔다.

하나 끝나면 또 하나의 일이 나를 기다렸다.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여유와 휴식을 즐겨야 한다는 글들은 많이 읽었다.

그래야 충전이 되고 재창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말들은 달콤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정작 실천하지 못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11월의 시간들이 지나가면서 낙엽 못지않게 내 마음도 바스락거린다.

감정도 건조해졌음을 느낀다.

점점 더 건조해지면서 겨울을 맞이하는 패턴이 해마다 반복된다.

이제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마지막 물기가 다 마르기 전에 단풍 한 번 봤어야 하는데 아쉽다.

삼천리 반도가 금수강산인데 그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단풍구경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나라도 엄청 많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단풍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풍은 가을철에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심한 지역이라야 볼 수 있다.

남반구에서는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 북반구에서는 동아시아 지역과 유럽 남서부 혹은 북아메리카 동북부 지역에서라야 제대로 볼 수 있다.

1년 내내 더운 지방이나 추운 지방에서는 단풍구경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실컷 단풍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축복이다.




단풍이 드는 이유는 나무들이 춥고 건조한 겨울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오면 나무들은 당장 생존에 필요한 수분이 부족하게 된다.

그래서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들은 잎과 잎자루 사이의 조직을 딱딱하게 만들어서 줄기에서 잎으로 지나는 수분의 통로를 막는다.

건조한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 나무가 스스로 수분의 함량을 낮추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나뭇잎에 있는 엽록소가 광합성작용을 열심히 함으로써 나무를 푸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수분의 통로가 끊긴 나뭇잎에서는 더 이상 엽록소가 광합성작용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엽록소 뒤에 가려져 있었던 다른 빛깔의 물질들이 앞으로 튀어나오면서 나뭇잎을 빨갛게도 물들이고 노랗게도 물들인다.

그렇게 해서 화사한 단풍이 만들어진다.




단풍잎은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한다.

수분의 통로를 차단하여 자신은 말라죽더라도 나무의 몸통을 살려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명이 다하면 땅에 떨어지는 낙엽이 되어 내 발걸음을 운치 있게 만든다.

그때, 단풍을 알록달록하게 만들었던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는 흙속에 있는 뿌리로 스며든다.

안토시아닌이 나무의 뿌리를 감싸면 해충이 뿌리를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

그러니까 단풍은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져 썩어지면서까지도 나무를 살리고 지켜내는 고귀한 존재이다.

정몽주의 <단심가>처럼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나무를 향한 일편단심을 지키는 게 단풍이다.

언제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알랑방귀를 뀌다가 자기에게 조그마한 손해가 온다거나 이익이 생기면 입 싹 씻고 떠나가버리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안도현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낙엽 함부로 밟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낙엽을 밟을 때마다 자신을 희생하는 낙엽의 숭고한 정신을 생각하라고 말이다.

낙엽 함부로 밟지 마라001.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