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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07. 2020

수도꼭지를 교체하며


얼마 전부터 수도꼭지에서 물이 한 방울씩 똑 똑 떨어지고 있었다.

꽉 안 잠겨서 그런가 싶어 나름 밸브를 신경 써서 잠갔지만 몇 초 지나면 한 방울 똑! 떨어진다.


바꿀까 말까 고민을 했다. 고작 한 방울씩인데, 1분 동안 흘러봐야 여남은 방울, 한 시간을 흐르고 두세 시간을 흘러도 한 컵도 안 될 텐데, 그냥 둘까 생각도 했다.

교체하는 비용과 그냥 두었을 때 물 값은 비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별 것 아닌 일이라고 넘어가도 되는데 신경이 쓰였다. 한 방울의 물은 두 방울이 되고 언젠가는 물줄기가 뿜어져 나올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까지 가기 전에 일단 계속 물이 흐르는 것이 거슬렸다.


수도꼭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필요할 때는 물을 나오게 하고 필요 없을 때는 물을 잠그기 위함인데 이것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을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일단 하는 쪽으로 선택을 한다. 이번에도 그렇게 수도꼭지를 교체하기로 했다.


새 물건을 구입하고 몽키와 드라이버, 누수 방지 테이프를 준비하였다.

양수기함을 찾아서 밸브를 잠그고 십 년 넘게 내게 헌신했던 낡은 수도꼭지를 탈거했다.


작업을 하다 보니 수도꼭지를 수도관과 연결시켜주는 연결 파이프는 예전 것을 그냥 사용해도 될 것 같았다.

물방울이 새어 나온 부위는 수도꼭지였으니까 굳이 연결 파이프까지 교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딴에는 정성껏 연결 부위에 테이프를 둘러 감고 수도꼭지를 끼우고 몽키로 꽉 조였다.

그리고 양수기함에 가서 밸브를 열었다.

다시 와서 수도꼭지를 돌리니 물줄기가 시원하게 뿜어져 나왔다. 차가운 물, 따뜻한 물, 모두 잘 나왔다.

내 마음이 다 시원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번에는 수도꼭지와 수도관을 연결하는 자그마한 파이프 쪽에서 물이 한 방울씩 고이고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새 파이프는 또 새 파이프와 연결했어야 했는데... 조금 편하게 일 하려던 꼼수 때문에 되레 처음부터 다시 작업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 물이 새는 것일까?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밸브 속에 숨겨져 있는 고무패킹이 낡아서 그런 것이다.


처음에는 반들반들했던 패킹이 세월이 지나면서 삭아지고 살짝 찢어지고 뜯기고 구멍이 나면서 물이 스며들고 흐르게 된 것이다.

이리저리 그 낡은 것을 어쨌든 써 보려고 밸브를 조이고 풀고 했더니 아까보다 더 많은 물이 흐른다. 정말 낭패다.

처음부터 다시 완전히 새 것으로 교체해야만 한다.     


귀찮지만 수도꼭지와 연결 파이프까지 모두 다 해체하고 다시 새 것으로만 조립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을 틀고 한참을 살펴봤다. 물을 잠그고서도 계속 지켜보았다. 물방울이 새는지, 물이 흐르는지.

완벽했다. 성공이다. 완벽히 물을 막았다.


뭐 대단한 일도 아닌데 생각은 많아지고 깊어졌다.

파이프는 물을 잘 흐르게 해야 하고 밸브는 물을 흐르지 못하도록 잠가야 하는데 파이프에 이물질이 끼어서 물의 흐름을 막아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밸브가 낡아서 물을 잠그지 못하고 도리어 새어 나오게 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혹시 나도 그렇게 흘러가야 할 것을 중간에서 막아버리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온 힘을 다해 막아야 하는데 느슨하게 풀어져서 막을 것을 도리어 흘려버리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새롭게 교체한 수도꼭지가 나를 바라본다.

이제 다시 제대로 일을 하겠다고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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