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Oct 07. 2020

우리 동네 중국집 미금역 메이찬


도시의 웬만한 동네에는 중국집이 몇 가게씩은 꼭 있다.

우리 집 근처에도 걸어서 10분 거리에 줄잡아 열 곳은 있다.

북경, 베이징, 취옹, 홍콩, 하오, 동천홍, 교동짬뽕... 그 여러 가게 중에서도 나는 메이찬을 간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지하철 미금역 3번이나 4번 출구에서 골목 하나만 접어들면 나오는 그리 크지 않은 식당이다.

여느 중국집이나 다 그렇듯이 빨간색 간판이다.

중국인들은 빨간색이 복이 들어오는 색이라고 생각하니까 간판은 일단 빨간색으로 한다.


그렇다고 주인 사장님이 중국인은 아니다.

순수 혈통 한국인이다.

그래서인지 正統中國料理(정통중국요리) 美餐(미찬)이라는 한자는 자그맣게 쓰고 한글로 큼지막하게 ‘메이찬’이라고 써 놓았다.

그러니까 美餐의 중국식 발음이 ‘메이찬’이다. 뜻은 ‘맛있는 음식’이고.



10년 전에는 사거리 높은 건물의 눈에 딱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었다. 그때의 가게 이름은 ‘예원’이었다.

동네에 오래 살고 계신 분들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있다.


매운맛의 불짬뽕이 일품이었다느니, 주문하고 돌아서면 곧바로 음식이 나왔다느니, 짜장면 배달은 예원이 다 했다느니 등 이야깃거리가 많다.


그 중에서도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짜장면을 반값만 받으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그러니 먹성 좋은 청소년들이 즐겨 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때 예원에서 짜장면을 얻어먹은 아이들이 지금은 시집가고 장가가서 또 먹성 좋은 아들과 딸들을 낳았을 것이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요리만으로 승부를 걸어보시려고 옆 동네 번화가 한복판의 큼지막한 곳으로 가게를 옮기셨다. 예원이 이사 간다는 소문에 동네사람들은 많이들 아쉬워하였다.     




사장님은 남 좋은 일 혼자서 다 하시는 분이시라 옆 동네에서 마음고생 몸고생이 참 많으셨던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이 비슷비슷하지 않은가?

데리고 있던 사람에게 서운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모아 놓은 것을 하나씩 잃어버리기도 하고, 몸이 약해지기도 하고. 이런 일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그때 허탈해서 손을 놓아버리는 사람이 있고, ‘그래도’ 하면서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있다.

사장님은 ‘그래도’ 축에 속했다.


김승희 시인은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라는 시에서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라고 노래했다.


이 시를 아셨는지 모르지만 사장님의 마음에도 ‘그래도’라는 섬이 있었나 보다.     




이번에는 자그마하게 시작한다고 하셨다.

자존심도 죽이고 그저 손님들에게 흐뭇하게 잘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가게 이름을 ‘맛있는 음식’이란 뜻의 ‘메이찬’이라고 했나 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고급식당의 비싼 음식이 아니라 친한 사람들과 만나서 기분 좋게 나눠 먹는 음식 아닌가?

사장님은 그렇게 사람 살아가는 즐거움이 가득한 중국집을 만들고 싶으셨던 것 같다.


누구나 편안하게 들어오라고 벽을 다 없애고 통유리로 시원하게 만드셨다. 아예 입구 쪽은 유리문도 치워버리셨다.

사장님이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에 얼마 안 되는 자리는 금방 채워지고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들도 많아졌다.

기다리더라도 이 집에서 먹고 싶은 것은 넉넉한 인심에, 사장님의 따스한 접대에, 안주인 사장님의 해맑은 웃음이 어우러져서 음식의 풍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짜장면 먹으러 우리 동네 중국집 메이찬에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도꼭지를 교체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