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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12. 2020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주인공 장발장은 누이와 7명의 조카를 먹이려 빵을 훔친 죄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굶주린 조카들이 염려되어 탈옥을 시도하다가 잡혀서 무려 12년의 형이 추가되었다. 빵 하나 훔쳤다가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것이다.


당시 빵 하나가 우리가 생각하는 손바닥만 한 크기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먹을 만큼 컸다는 주장도 있는데 어쨌거나 한 덩어리의 빵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1830년대의 프랑스이다.


현대의 우리로서는 세계적인 강대국인 프랑스에도 저렇게 굶주리는 사람이 있었을까 싶어 의아해진다. 그러나 예전에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굶주림은 일상이었다. 굶주림은 비참하다. 그래서 레 미제라블은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군중들은 “우리에게 빵을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외쳤다고 하니 굶주림은 죽음처럼 무서운 것이었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설움은 굶주림이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의식주(衣食住)라는 세 가지의 기본적인 조건이 주어져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식(食)’, 먹거리이다. 옷이나 집은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간다. 하지만 먹거리가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


먹지 않으면 곧 죽는다.

그러니까 빵을 주지 않으면 죽는다고 프랑스 시민들이 외친 것이다. 결국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한 성난 군중들의 손에 루이 16세 왕과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나라의 땅을 크게 넓히고 엄청난 궁전에서 호화롭게 살더라도 백성을 먹이지 못하면 실패한 왕이 되고 마는 것이다.




굶주림은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면 당신들이 어렸을 적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풀도 먹고 나무도 먹었다고 하신다.

그러면 아이들은 “라면이라도 드시지 그러셨어요?”라는 반응을 한단다.

공양미 삼백 석에 딸을 팔아야 했던 심봉사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실제로 그런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소설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쌀 몇 가마니에 자식을 팔았던, 아니 팔 수밖에 없었던 우리네 조상들의 삶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하루 세 끼를 먹고, 맛집을 찾아가고, 배부르게 먹은 후에 살 뺀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는 소식을 이 땅에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듣는다면 거기서도 기절초풍할 것이다.

우리는 기적처럼 배고픔의 문제를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굶주려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은 우리나라의 사상 첫 16강 진출의 역사를 이룬 후에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에게는 월드컵 8강, 4강 달성이라는 배고픔이 있었던 것이다.


일평생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던 마더 테레사는

“세상에는 빵 한 조각의 굶주림만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이해심 있는 사랑에 대한 굶주림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굶주림도 있습니다. 헐벗음이란 입을 옷 하나 없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헐벗음이란 인간 존엄의 상실이며 순수함이 지닌 아름다운 미덕의 상실입니다.”

라고 하였다.


잠깐 냉장고를 열어보니 고기와 생선, 야채와 계란, 음료수와 과일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야 할 텐데 내 마음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배고픈 것이다. 그래,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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