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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15. 2020

종로 길거리 탁구에서 대패한 날


언젠가 아내와 종로를 걷다가 길 한복판에 탁구대가 놓인 것을 보았다.

웬 아저씨가 길거리 탁구를 하자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불렀다.

재밌겠다 싶어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구경을 했다.

아저씨의 실력은 뭐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고 탁구 좀 치는 편이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다가와서 탁구를 치고 갔다.

아저씨를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내에게 내가 나서겠다고 했다.

아내는 괜히 웃음거리가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를 뭘로 보냐고. 이래 봬도 왕년에 한 탁구 쳤었다며 자신 있게 나섰다.

바람이 살짝 불어왔다. 그래도 그 정도 바람쯤이야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길거리에서 하는 시합이니 바람이 잠잠하든 살짝 불든 서로가 동일한 환경이다.

탁구라켓은 길거리 수준에 맞춘 싸구려 라켓이었다.

인사하고 시합을 시작했다.




내가 탁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소꿉친구 여자애의 영향이 크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탁구선수가 되었다.

나는 방과 후에 유리창 너머로 훈련 중인 탁구부원들을 몰래몰래 살펴보곤 했었다.

친구는 실력이 점점 좋아져서 시합에 나가서 어느 정도 성적도 거두곤 했다. 중학생 때도 탁구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슬슬 약이 올랐다. 소꿉친구를 탁구로 이기고 싶었다.


마침 교회에서 탁구대를 한 대 구입했다.

처음에는 어른들이 차지했는데 얼마 후부터 우리 중고등학생들이 점령했다.

과외도 없었던 시절이니 남는 시간이 꽤 많았다.

나는 틈만 나면 교회 탁구실로 갔다.

함께 할 친구가 있으면 같이 치고 혼자일 때는 탁구대를 벽에 붙여서 벽치기 탁구도 하고 서비스 연습도 했다.

그렇게 1년에 300일 정도는 탁구를 쳤다.




중학생인 나의 실력은 어느새 대학생 선배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소꿉친구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여러 사람이 볼 때는 살살 치면서 경기를 맞춰주다가 단 둘이 있게 되면 무서운 마녀로 둔갑을 했다.

나는 소꿉친구의 서비스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래도 그 정도면 어디 가서 탁구에 대해서는 자신 있었다.

그래서 종로 한복판 길거리 탁구에 도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내가 휘두를 때마다 마치 라켓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공이 빠져나갔다.

한 번이라면 실수라고 하겠지만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되었다.

점수 한 점 따는 것조차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머릿속에서는 분명 공의 회전과 속도를 감지하고 내 라켓의 각도까지 다 조율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연속 헛스윙만 해댔다.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웃음을 선사하고 나는 장렬하게 참패를 당하였다.

탁구대를 떠나면서 아내에게는 바람 때문에 진 것 같다고 중얼거렸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도 알고 내 마음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과거에 뻔질나게 탁구장을 드나들었어도 계속 연습하지 않으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장수는 무기를 탓하지 않고 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통내기들은 자신의 실력은 돌아보지 않고 장비가 안 좋아서 졌다고들 한다.

그래서 무엇인가 배울 때가 되면 일단 장비는 제일 좋은 것으로 구입하려고 한다.


그런데 장수나 선수가 일반인과 정말 차이가 나는 점이 있다.

그것은 꾸준한 연습과 훈련이다.

물론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꾸준한 훈련에 비할 수는 없다.

실력은 꾸준한 연습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더라도 꾸준해야 한다.

꾸준하지 않았다면 나서지 말아야 한다.

예전 경험과 실력만 믿고 나섰다가는 나처럼 종로에서 대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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