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내리고 너를 올려주는 사람

by 박은석


서른 살 된 청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나이의 청년들이 느끼는 고민들이 고스란히 쏟아져나왔다.

살아갈 날은 많은 것 같은데 자신을 감싸줄 보호막이 별로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다가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잠시 쉰다고 했던 것이 1년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났다고 한다.

그동안 집안일을 하는 요령은 꽤 많이 늘었다고 한다.

이제는 거의 모든 가사를 도맡아 하고 있다.

그가 아니면 당장 집안일을 할 사람도 없는 상태이다.

전업주부라고 할 수는 없는데 전업주부처럼 살아가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그가 처해 있는 환경이 그를 옭아 묶는 것처럼 보인다.

평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는데 빠져나올 구멍이 안 보인다.

잠깐만 이렇게 지내려고 한다는데 그 잠깐만이라는 시간이 애매모호하다.

잠깐만이 한두 달이면 좋겠지만 그게 1년이 될 수도 있고 10년이 될 수도 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칠순이 넘은 어르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물세 살 때 결혼했는데 딱 1년을 알콩달콩 살고 나니까 시댁에서 폭격이 시작되었다고 하셨다.

“너희들만 잘살면 좋니?”라고 시어머니께서 한 말씀 하셨다고 한다.

장남인 남편에게는 다섯 명의 동생들이 있었다.

시아버지는 남편이 고등학생 때 세상을 떠나셨기에 남편이 가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시동생들과 시누들은 공부도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모두들 남편만 바라보는 눈치였다고 한다.

그분의 심성이 착해서인지 현모양처를 미덕으로 삼았던 시대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시댁의 짐을 고스란히 지기로 하셨다.

남편 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자리를 잡기까지 계속 도와주었다고 하셨다.

아마 그때는 앞이 캄캄하셨을 것이다.

‘왜 내가 해야 하나?’

‘언제까지 해야 하나?’

라는 고민이 매일 반복되었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하셨다.




자기계발서들을 읽다 보면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래야 자기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는 것이고 세월이 지나서도 지나온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아예 책 제목을 그렇게 정한 작가도 있다.

멋진 말이다.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을 가지고 그렇게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겠나?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곁에는 가슴이 시키는 일을 가슴속에 잠재워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한다면 가슴이 시키지 않는 일은 누가 할 것인가?

가슴에서는 가방 메고 떠나라고 하는데 모두가 다 떠나버리면 집은 누가 지키나?

통장에 돈도 얼마 없는데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한답시고 다 써버리면 그다음에는 뭘 먹고 살아갈 것인가?

가슴 시키는 일을 한다며 아픈 식구를 나 몰라라 할 수 있는가?




이래서 사는 게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나 혼자만 생각한다면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이다.

하지만 식구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많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다.

그런 시간들을 수없이 맞이한다.

누군들 꿈이 없었을까?

야망이 없었을까?

그 찬란했던 꿈과 야망을 내려놓고 살아가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은 가슴이 시키는 일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내려놓으면 다른 이가 올라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나와 너가 마치 시소게임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올라가면 너는 내려가고 내가 내려가면 너는 올라간다.

무조건 내가 올라가야 좋은 것이 아니다.

나를 내리고 너를 올려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만약 높이 올라갔다면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나를 올려주느라 내려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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