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나에게 인생의 열매를 맺게 해주었다

by 박은석


내 책상에는 15년 전에 찍은 가족사진이 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이어서 세 사람만 찍혀 있다.

나와 아내가 서 있고 중간에 딸내미가 있다.

아직 어린이집에도 들어가기 전이었기에 내 팔에 안겨 있다.

그 사진을 보다가 집에 들어가면 깜짝깜짝 놀란다.

우리 집에 웬 이쁘장한 아가씨가 한 명 앉아 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기애기였는데 언제 이렇게 커버린 것일까?

이제는 제 엄마보다도 키가 크다.

아내의 배에서 이런 큰 애가 나왔나 의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키가 그대로인데 딸내미는 세 배는 커졌다.

그때는 한 팔로 번쩍 안았는데 이제는 두 팔로 안기도 힘에 부칠 것 같다.

얼마 전에 좀 힘든 일이 있어서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딸내미가 두 팔 벌리고 다가와서 꼭 안아주었다.

하! 내 품에 안겼던 딸내미가 나를 안아주는 딸내미가 되다니! 새삼 놀랍다.




소설가 조정래의 <아리랑>이란 책을 보면 동학운동을 펼치다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북방의 간도 땅으로 이주해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낯선 땅에서 죽기 살기로 견디고 땅을 개간해서 마을을 일구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일제에 저항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에 일제가 그곳까지 세력을 뻗어오니까 그곳에서 일제에 저항해서 싸우려고 했다.

마을에서 지원병들을 모집한다고 하니까 서로 자기들이 나서겠다고 했다.

그때 “아버지, 아버지는 그동안 많이 싸웠으니까 이번에는 뒤로 빠지세요.

저희가 싸울게요.”하고 나서는 아들들이 있었다.

바로 자신들이 업어서 오고 안아서 온 아들들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이주 1세대 사람들은 감개무량하여 중얼거렸다.

“저 녀석들이 언제 저렇게 커버렸나?”하고 말이다.

그때 옆에서 누가 그런 말을 했다.

“저 녀석들이 우리의 살을 먹고 우리의 뼈를 먹으면서 저렇게 컸구먼.”




자녀들이 성장해간 것이 신기하다.

분명 품 안의 자식이었는데 어느덧 부모보다 더 키가 커지고 덩치가 커졌다.

그리고 그만큼 부모들은 약해졌다.

자식들에게 이것저것 다 뺏기다 보니 키도 작아지고 몸도 줄어들었다.

전에는 자식들을 위해서 못할 것 없다고 큰소리 떵떵 쳤다.

그런데 점차 이 아이들에게 해줄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힘도 세고 건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만큼 힘이 세지도 않고 그때만큼 건강하지도 않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보호자 이름을 적으라면 당연히 아이들은 부모님의 이름을 적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병원에서 부모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OO씨 보호자 분 오세요!”하면 자녀들이 나선다.

내가 부모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덧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된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이 내 아이들도 언젠가는 나의 보호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인생이 간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어가고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서글플 수 있다.

그러나 또 어떻게 보면 이 녀석들을 어떻게 키우나 했는데 이만큼 자랐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다.

내 힘이 빠져나가더라도 나랑 똑 닮은 녀석이 떡하니 서 있고 내가 약해지더라도 나랑 닮은 녀석이 강해졌으니까 손해 본 것은 하나도 없다.

아니 오히려 내 곁에 나를 닮은 녀석이 있으니까 내가 둘이 되었고 두 배 이익을 본 것이다.

세월이 강물처럼 덧없이 흘러간다고 하는데 뭘 모르는 소리다.

강물이 그냥 흘러가는 것 같지만 하구에 가 보면 넓디넓은 모래톱을 쌓아놓는다.

세월도 흐르고 흘러서 저 끝에서는 드넓은 세상을 열어줄 것이다.

세월은 흘러가는데 아무것도 이루어놓은 게 없다고 자신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내가 깨닫든 못 깨닫든 상관없이 세월은 나에게 인생이라는 열매를 맺게 해주었다.

그것도 아주 풍성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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