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족쇄를 벗어버리자

by 박은석


멕시코 화폐 500페소를 보면 앞면에는 디에고 리베라의 사진이 있고 뒷면에는 프리다 칼로의 사진이 있다.

아니 앞면이 프리다 칼로이고 뒷면이 디에고 리베라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폐라는 것이 어느 쪽이 앞면이고 어느 쪽이 뒷면이라고 딱히 말할 수 없지 않은가?

화폐에 사람 얼굴을 새길 경우에는 그 나라에서 영향력이 높은 인물 한 명을 새긴다.

그런데 멕시코 500페소에는 두 명의 인물을 각각 앞뒤로 실었다.

둘은 스승과 제자 사이였는데 부부가 되었다.

리베라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민중화가이다.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다.

프리다 칼로도 리베라 덕분에 미술에 눈을 뜨게 되었다.

칼로도 처음에는 리베라를 위대한 스승님으로 대했다.

매일 “선생님, 선생님”하고 불렀었는데

저쪽에서 “우리 이제부터 호칭을 바꾸자.”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둘은 사랑하기로 했고 그 사랑이 불같이 타올라 곧 부부가 되었다.




부부는 일심동체이니까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변치 않는 사랑을 나누고,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일부분의 생각인 것 같다.

그렇게 활활 타올랐던 사랑이었는데 타올랐던 기세만큼 불이 꺼지는 속도도 빨랐다.

이 부부의 경우는 리베라가 칼로를 많이 힘들게 했다.

계속 다른 사람을 만났으니까 말이다.

칼로는 용서하고 용서하고 용서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이 무한정 용서하기란 어렵다.

말은 용서한다고 하지만 마음은 용서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칼로의 마음도 그랬다.

그녀는 마음에 담긴 생각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아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칼로의 그림을 보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그녀의 그림을 보면 그 그림 안에 내 마음이 들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에게도 아직까지 남에게 들키지 않은 나만의 섬뜩한 그림이 숨어 있다.




한 번 갈라진 그릇은 다시 새것처럼 붙일 수가 없다.

아무리 최신 기술로 봉합한다고 해도 갈라졌던 부분에 흉터가 남는다.

그리고 그 갈라진 부위는 점점 커지고 결국은 그릇 전체를 쪼개버린다.

리베라와 칼로의 관계도 그랬다.

리베라는 나이 많은 남편이면서도 사고뭉치 아이 같았다.

결국 칼로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았고 전 세계에 소문난 사이좋지 못한 부부가 되고 말았다.

둘 다 그림 실력으로는 멕시코의 위상을 온 세상에 드러낸 위대한 화가이다.

그래서 멕시코 당국에서도 두 사람의 얼굴을 온 국민이 알게끔 지폐에 새겨넣기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부가 한 장의 사진에 들어가지 못하고 한 면에는 남편의 얼굴이 다른 한 면에는 아내의 얼굴이 실렸다.

같은 종이에 그려졌지만 정반대의 방향을 보고 있다.

몸과 마음이 하나여야 하는데 한 몸에 두 마음을 품은 것처럼 한 종이에 두 면으로 나뉘어 그려졌다.




사고뭉치였던 리베라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마치 다리에 족쇄를 차고 있는 노예처럼 여기저기로 끌려다녔다.

칼로에게는 그런 남편이 또 족쇄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처럼 칼로 잘라내려고 해도 잘리지 않았다.

오히려 칼로의 마음만 칼로 벤 듯 상처가 깊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칼로의 상처가 깊어지면서 그의 미술세계도 깊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칼로의 그림은 그 자체로 그녀의 아픈 마음을 드러낸다.

빼낼 수 없는 그녀의 족쇄를 상징한다.

세상에 족쇄를 차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노예들은 발에 족쇄를 찼고 주인들은 마음에 족쇄를 찼다.

발에 채워진 족쇄는 벗을 수 있었지만 마음의 족쇄는 쉽사리 벗을 수 없었다.

멕시코의 500페소 지폐는 우리에게 외친다.

마음의 족쇄는 500페소뿐이라고.

그까짓 500페소 때문에 둘이 다른 곳 보지 말자고 말이다.

(멕시코 500페소의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 500페소의 프리다 칼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번 아웃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좋은 방법